[전문가 칼럼] 류병철 천안서북소방서 예방안전담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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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무척 짧고도 긴 시간이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거나 좋은 사람과 커피 한 잔을 마시기엔 짧은 시간이지만 화마가 휩쓸 때 모든 재산이 사라지고 생명까지 잃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자동차 등록대수가 1800만 대에 이르며 2014년 경에는 20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늘어나는 차량들로 인해 도로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도로상황이 악화됐다 해서 긴급출동 시 ‘5분 내 도착’의 중요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지난해 전국에서 4만1863건의 화재가 발생해 인명피해 1892명(사망 304명, 부상 1588명)과 재산피해 2667억여 원이 발생했다. 또 구조출동 39만여 건, 구급출동 204만여 건을 실시해 148만여 명을 응급처치 후 병원으로 이송했다.

화재발생시 5분이 경과되면 화재의 연소 확산 속도와 면적이 급격히 증가해 인명구조를 위해 화재구역에 진입하기 어려워진다. 심정지나 호흡곤란 환자는 4~6분이 골든타임(Golden Time)이라 해서 이 시간 안에 응급처치를 받지 못하면 심각한 뇌 손상으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화재·구조·구급 현장으로 출동하는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이 ‘5분’의 시간에 사활을 건다.

서북소방서는 매월 소방통로 확보훈련 실시, 소방차량에 블랙박스를 설치해 긴급차량 양보의무 위반차량 단속, 언론매체를 통한 계도활동 등을 통해 긴급차량에 대한 양보와 소방통로 불법 주·정차 근절을 위한 시민 계도활동을 벌이고 있다.

출동 도중에 도로 한가운데서 발이 묶인 채 사이렌만 울리면서 시간을 보낼 때, 인명과 재산 피해가 확대됨을 잘 아는 소방관들은 애만 태우게 된다. 때문에 시민의 생명길이라 할 수 있는 소방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각종 계도 활동은 물론 도로교통법의 규정에 의거 단속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9일 개정된 도로교통법 시행에 따라 긴급자동차에 대한 양보의무 위반차량 단속이 시작됐다. 긴급자동차가 접근하는 경우에 교차로를 피해 도로의 우측 가장자리에 일시정지하지 않는 차량은 2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소방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마련한 강행규정이다. 천안 서북소방서는 효과적인 단속을 위해 소방차 등 긴급 차량 26대에 블랙박스를 설치하고 영상기록을 통해 위반사실이 확인될 경우 천안시에 의뢰해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하지만 강행규정 이전에 우리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화재·구조·구급의 모든 현장에 소방차가 5분 이내 도착할 수 있도록 생명의 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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