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두뇌 모인다 … 대덕밸리는 창조 특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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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의학연구원에서 베트남 출신의 연구원 팜둑두옹(왼쪽)이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베트남 출신의 팜둑두옹(Pham Ducduong·37)은 5년째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 베트남 국립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한의학을 배우기 위해 2008년 2월 한국에 왔다. 현재 대전시 유성구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학의학연구원에서 일한다. 그의 신분은 포스닥(박사 후 연수) 과정의 연구원. 국내 연구원 수준 급여를 받는 그는 “아내 학업(배재대 의상디자인 석사 과정)과 다섯 살 아들 등 세 식구가 사는 데 불편함이 없다”며 “돌 지나 한국에 온 아들은 한국말을 유창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김치찌개와 삼겹살·불고기를 즐긴다. 한국말이 유창한 아들은 떡을 가장 좋아한다.

매주 금요일에는 한국 음식과 문화 탐방에 나선다. 대전 시내 등 인근 맛집에서 전통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영화를 본다. 지난해 11월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산 뒤로는 나들이가 잦아졌다. 팜은 “내년 2월 베트남에 돌아갈 예정인데 한국 곳곳을 돌아보고 문화와 역사, 풍경을 담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외국인 연구자 브레인들의 메카가 되고 있다. 이곳에는 1266개 연구원·기업에서 5만5614명의 연구원과 사무원이 일한다. 이 가운데 외국인은 587명으로 연구원이 451명에 달한다. 외국인 연구원 숫자로만 보면 전국 최대 규모다. 일본과 중국·베트남·인도 등 아시아권을 비롯해 미국, 유럽, 아프리카까지 국적이 다양하다. 대개 4~5년씩 체류하며 한국의 과학기술을 배운다. 인근 KAIST와 충남대에도 외국인 유학생 1000여 명이 공부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대부분 기숙사나 아파트·빌라에서 산다. 급여는 국내 연구원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높다.

 한국의 실리콘 밸리를 표방하는 대전 유성구는 KAIST 인근 어은동에 국제화존(International Zone·3만1200㎡)을 조성했다. 외국 연구원과 유학생들이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문화를 즐기는 공간이다. 서울 용산 이태원과 흡사한 분위기가 난다. 14일 둘러본 국제화존에는 영어와 일본어 등 외국어 안내판이 즐비했다. 음식점과 노래방 입구에는 ‘외국인 10~30% 할인’이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한국 음식점 주인은 “국제화존 주변은 주말에는 외국인들로 붐빈다”며 “경제력이 있는 연구원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매출에도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한국음식점 외에도 베트남쌀국수집 등 외국음식점 10여 곳과 식료품 판매점이 운영 중이다.

 국제화존에서 만난 일본인 유학생은 “낯선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 식사도 하며 향수를 달랜다”며 “다른 연구원이나 대학의 유학생과 어울려 모국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11년 전 한국에 온 KAIST 어학센터의 믹 팽가이(Mik fanguy·35) 초빙교수도 국제화존을 자주 찾는다. 그는 “처음 대덕특구에 왔을 때는 외국인을 위한 시설이 많지 않아 불편했다”며 “국제화존이 활성화됐고 편의점과 음식점 등 각종 시설이 갈 갖춰져 생활이 편리하다”고 말했다. 3년 전 러시아 여성과 결혼한 그는 휴일마다 대전 인근에서 산악자전거를 즐긴다. 팽가이는 “추수감사절 같은 기념일에는 친구들끼리 모여 아파트에서 칠면조 요리를 해먹는다”고 했다.

 대전시는 외국인들을 대전시민으로 포용하고 있다. 연구원들의 고민 중 하나인 교육문제 해결을 위해 대덕특구 인근에 정원 1500명 규모의 외국인 학교를 건립할 예정이다. 을지대학병원을 외국인 전용 병원으로 지정하는 등 긴급의료체계도 구축했다. 올 3월부터는 대덕특구 연구원과 외국인 유학생을 위해 의료기관 건강투어를 하고 있다. 대전시 김기원 공보관은 “대덕특구에서 일하는 외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며 “외국인 연구원과 유학생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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