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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부장님, 또 한 대 피우셨군요 불이익을 다운 받으시겠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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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기업들이 ‘담배와의 전쟁’에 나섰다. 직원들의 건강관리 역시 일종의 ‘위기 관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흡연이 기업의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계산도 더해졌다. 최지성(61) 삼성 미래전략실장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휴가를 보름간 더 간 것과 같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한 번 담배를 피울 때마다 흡연 장소로 이동해 흡연한 뒤 업무에 복귀하는 데 5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하루에 담배를 1갑 정도 피우는 흡연자의 경우 1년에 보름 이상을 흡연 시간으로 허비한다는 계산이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빌딩 전체가 금연인데 하루에 몇 번씩 흡연 장소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게 반복된다면 좋아보일 리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기업들의 금연정책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금연펀드, 선물 증정 등 ‘인센티브’에 중점을 둔 곳이 있는가 하면 인사상 불이익, 부서 평가에 반영 등 ‘강력한 규제’에 나선 곳도 있다.

 이 같은 기업의 움직임은 사회적인 금연 분위기와 맥을 같이한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후부터 금연정책의 강도를 연일 높이고 있다. 금연빌딩 지정은 물론 2015년까지 모든 음식점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겠다고 나섰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골초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의 만 15세 이상 남성 흡연율은 2009년 기준 44.3%로 그리스(46.3%)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09년 “흡연으로 인한 조기 사망에 따른 소득 손실(3조5000억원)에 흡연 관련 질병으로 인한 진료비(1조4000억원) 등을 포함해 매년 5조6000억원의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걸리면 인사상 불이익” 징벌형

CJ그룹 서울 남산사옥 구내식당에서 직원들이 샐러드 위주의 금연 식단을 받아들고 있다. [사진 CJ]

 삼성전자는 흡연자에 대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있다. 담배 연기가 반도체 생산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에서 부품(DS)부문은 지난해부터 전 사업장을 강제금연사업장으로 지정했다. 올 4월 13일에는 DS사업 부문 직원 3만5000명에게 e-메일을 보내 “앞으로 흡연자들은 임원 승진, 해외 주재원 선발, 해외 지역 전문가 선발 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결정은 당시 반도체와 발광다이오드(LED) 사업을 담당하던 권오현(60) 부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승진 대상자 간 인사 평가 점수가 비슷할 경우 흡연자를 탈락시킬 방침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DS부문 전 직원으로부터 금연 서약서도 받았다. 인사 불이익은 현재 DS부문에 국한돼 있지만 휴대전화·TV를 만드는 완제품(DMC) 부문도 조만간 비슷한 조치가 내려질 전망이다. DMC 역시 주력 사업장인 수원사업장을 지난해 강제금연 사업장으로 지정하는 등 ‘담배 추방’ 분위기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신입사원 선발 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대상그룹은 2009년부터 ‘GWP(Great Workplace)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강력한 금연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서울 신설동 본사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사옥·공장·중앙연구소 등이 금연구역이다. 인사팀 지원이 불시에 회사 주변을 순찰해 담배 피우는 직원을 ‘잡아내는’ 암행단속도 한다. 이 결과는 각 부서별 흡연율로 집계해 부서 평가 및 부서장 평가에 반영한다.

 ◆“건물 밖에서도 안 돼” 원천봉쇄형

 CJ그룹은 최근 계열사 건물 내부 전체는 물론 사옥반경 1㎞ 내 흡연 금지령을 내렸다. 특히 서울 퇴계로 CJ제일제당 센터 근방은 강력한 금연 권고 지역이다. CJ 측은 “다양한 음식점이 입주해 고객들이 많은데 직원들이 근처에서 담배 연기를 뿜으면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회사도 임직원 금연을 돕기로 했다. 지난달부터 CJ는 구내식당에서 ‘금연식단’을 운영 중이다. 체내 니코틴 배출에 도움이 되는 브로콜리·양배추 같은 십자화(十字花)과 채소와 혈당을 낮춰 흡연 욕구를 줄여주는 등푸른 생선 등으로 식단을 구성한다. 현재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임직원 중 44%가 금연식단을 선택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정준양(64) 포스코 회장의 전사적 금연 캠페인 역시 ‘원천봉쇄형’이다. 금연빌딩 지정 후 건물 밖으로 나가 흡연하는 직원을 막기 위해 2010년엔 강남구청과 협의해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인근을 아예 ‘금연 거리’로 지정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2009년 취임하자마자 ‘흡연율 제로(0)’를 선언하고 흡연 임직원 대상의 금연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회사 심리상담사와 면담을” 계도형

 이랜드는 ‘사내 금연학교’를 운영 중이다. 금연 학교에 입학하면 심리상담사·간호사 등과 정기적으로 금연 교육과 상담을 한다. 금연 중인 직원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면 사옥이나 지점 내 건강 증진실에 ‘SOS’를 요청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사우나를 권하거나 상담사가 함께 산책을 하며 흡연 욕구를 해소하도록 돕는다.

 현대백화점도 강제 금연정책 대신 부서 인센티브제를 선택했다. 부서 내 모든 팀원이 금연에 성공할 경우 수십만원의 회식비용을 지원한다. 문자로 금연을 독려하는 메시지나 폐암 관련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현대백화점 측은 “현재 사원들 중 99% 가까이가 비흡연자가 됐다”고 전했다.

 롯데마트는 2006년 10월부터 대리급 이상 간부사원을 대상으로 연 1회 소변·일산화탄소 검사를 통해 흡연 여부를 파악한다. 금연 직원들에 대해서는 고과 및 승진 시 인센티브를 준다. 2010년부터는 평사원이 10만원을 내고 6개월간 금연하면 회사에서 10만원을 더해 돌려주는 ‘금연 펀드’도 운영 중이다. 금연에 실패한 직원들은 적립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2010년 ‘금연 펀드 1기’는 300명 중 65명이 금연에 성공했고, 이듬해 2기는 230여 명 중 53명이 성공했다. 현재 180여 명의 3기 가입자들이 금연에 도전 중이다. 이재찬(52) 롯데마트 경영지원부문장은 “대리급 이상 직원의 흡연율이 2008년 28%에서 지난해 16%로 감소했다”며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쪽으로 계속 정책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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