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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온 외국인들이 꼽는 가장 후진적 교통문화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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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 4일 오후 3시 서울 가락동 도로에서 한 승용차가 갈지(之)자 운행을 했다. 차선을 급하게 바꾸다 결국 바로 옆을 지나가던 차량과 부딪쳤다. 가해 차량의 운전자 오모(54)씨는 바로 도망쳤다. 그러나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오씨는 만취해 혼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다.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56%. 보통 사람이 소주 2병 이상 마시면 나오는 수치다. 0.1%만 넘어도 운전면허가 취소된다. 경찰 조사결과 오씨는 이미 네 번이나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경력이 있었다.

 오씨와 같이 ‘도로의 흉기’가 돼 버린 상습 음주운전자의 차량을 아예 몰수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같은 내용의 ‘교통문화개선 종합추진계획’을 12일 발표했다. 요약하자면 단속은 강화하고, 규제는 풀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경찰은 검찰과 협의해 세 번 이상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된 상습 음주운전자의 차량을 몰수키로 했다. 법원이 확정판결을 내릴 경우 해당 차량은 공매에 부쳐지며 판매수익은 국고로 들어간다. 경찰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32개 주에서 1회만 음주운전이 적발돼도 차량을 몰수한다”며 “‘범죄행위에 제공한 물건은 몰수할 수 있다’(형법 48조)는 법규에 근거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몰수는 해당 음주운전자 소유의 차량에 한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최근 3년간 3회 음주운전이 적발된 이모씨의 차량을 몰수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 한문철(51) 변호사는 “취지는 좋지만 상당수 음주운전자가 다른 사람 소유의 차량을 몰고 있어 몰수가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유흥업소 밀집지역, 고속도로 출구 등을 음주단속 강화구역으로 선정한 뒤 경찰 오토바이 등으로 주 3회 이상 ‘그물망식 집중단속’을 벌이기로 했다. 음주운전 차량 동승자도 방조 혐의로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상습정체를 유발하는 꼬리물기를 막기 위해 신호등을 교차로 건너편에서 정지선 앞쪽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렇게 하면 운전자에게 정지선을 확실히 인식시킬 것으로 경찰은 기대하고 있다. 전북 전주와 경기 안산에서 신호등을 이동 설치한 뒤 각각 사망사고가 줄거나 정지선 준수율이 높아지는 효과를 봤다. 이에 대해 이수범(51· 교통공학) 서울시립대 교수는 “중·소 규모 도로에선 효과가 있지만 대규모 도로에선 선택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꼽는 가장 후진적 교통문화인 ‘이륜차의 인도주행’에 대한 근절 대책도 포함됐다. 이를 위해 동대문시장 등 대형 전통시장 주변에 이륜차 횡단도로를 따로 만들어 보행자와 오토바이가 섞이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이륜차 번호판을 영업용과 개인용으로 나눠 관리하고, 오토바이 전용 주차시설을 확대한다. 또 폭주족 단속을 전담하는 팀을 경찰서로까지 확대 편성해 단속을 강화할 예정이다.

 한편 경찰은 불법 주·정차 단속의 기준을 ‘원칙적 금지’에서 ‘원칙적 허용’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서울과 같은 초고밀도형 도시에서 주차시설을 새로 짓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재래시장 주변, 1.5t 이하 택배·소형 화물자동차의 주·정차 허용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도로변 주·정차의 경우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구간에 대해서만 2개의 노란색 줄로 표시하고, 나머지 지역에 대해선 탄력적으로 주차를 허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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