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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 때 최연소 연대 교수 …87년 이한열 사망 계기로 “실천 마르크스주의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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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호 03면

오세철 교수는 요즘 대학로의 연극배우다. 지난 3월엔 연극 ‘시계1’(문화창작집단 ‘날’)에 출연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이야기, 한국전쟁 희생자 이야기 등을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낸 이 연극에서 오 교수는 해설을 맡았다. 연극 무대에 오를 때마다 오 교수는 부모님을 떠올릴지 모른다.

오세철 교수는…

오 교수는 1943년 고려대 오화섭 교수와 이화여대 박노경 교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여인소극장’이라는 극단의 대표였고 아버지는 진보적인 외국 희곡을 옮기는 영문학 교수였다. 한국전쟁 때 어머니는 남로당의 일원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총살당했다. 오 교수는 그의 책 다시, 혁명을 말한다에서 “가족사는 지금의 나를 형성시키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5·16이 일어난 61년 그는 누나 오혜령씨와 연세대에 입학했다. 두 남매는 졸업 때 전체 수석과 차석을 차지했다. 27세에 연세대 최연소 교수가 된 그는 72년부터 미국의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곳에서 폭넓은 사회주의 관련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귀국 이후 오 교수는 자칭 ‘강단 마르크스주의자’가 됐다. 하지만 87년 6월항쟁은 그를 ‘실천하는 마르크스주의자’로 만들었다. 그의 강의를 듣던 이한열씨의 죽음 때문이었다. 정치투쟁에 뛰어든 그는 90년 이우재·김낙중·이재오·김문수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에 참여했다. 여러 조직의 결성·해체를 반복하면서 그는 노동자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을 결성했다. 그는 사노련 활동과 관련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고희를 앞둔 그는 강단에서 ‘사회심리학’ ‘한국 사회의 조직과 변동’을 가르치며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의 융합을 이야기한다. 학교 밖에서는 ‘사회실천연구소’를 꾸려 나가고 있다.

그가 사회주의 운동을 시작한 지도 어언 20여 년이 됐다. “노선 분화 과정에서 나는 늘 ‘조직을 깨는 사람’이었지만 12월 대선 뒤에는 그런 과정이 거의 끝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고희를 맞는 11월에는 출판기념회를 할 계획이다. 그에게 삶을 후회한 적이 없는지 물었다. “없다.”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저서로는 맑스주의, 조직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한국사회 변혁좌파운동의 반성과 모색다시, 혁명을 말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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