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간 498홈런 이승엽 … 출발은 ‘6개월만 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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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어느 날. 스무 살 청년 이승엽은 평생 가슴에 품고 갈 금언을 얻는다. 선배 이정훈(49·천안북일고 감독)이 이승엽에게 “내 좌우명이 ‘혼이 담긴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다. 이제는 너 가져라”고 했다. 순간 그 말이 이승엽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러곤 지금까지 그 말대로 살아왔다. 이승엽이 남다른 야구재능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그 스스로도 “야구를 시작한 이후 못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목표를 향해 질주한 근성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승엽도 없다.

 이승엽(36·삼성)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타자다. 아시아 한 시즌 홈런 기록(56개) 보유자이고 한·일 통산 500홈런을 2개 남겨 놓고 있다. 6일 현재 339홈런으로 양준혁(43·은퇴)의 한국 프로야구 통산 홈런 기록(351개) 경신도 눈앞에 두고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결정적인 안타와 홈런으로 대한민국 야구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팬들은 그에게 ‘국민타자’라는 애칭을 붙여 줬다.

 하지만 정작 국민타자의 시작은 ‘6개월짜리 시한부 타자’였다. 95년 삼성에 투수로 입단했으나 왼 팔꿈치 수술로 투수 훈련을 할 수 없게 되자 우용득 감독과 박승호 타격코치가 타자로 전향시켰다. “지금 투수 훈련을 할 수 없으니 올스타전까지 6개월만 타자를 해보자”는 감독의 제안을 신인 선수가 거부할 수 없었다. 한국 프로야구사를 바꾸는 결정이었다.

 타자로서의 도전은 성공이었다. 95년 4월 15일 대타로 나선 프로 첫 타석에서 김용수(당시 LG)로부터 중전안타를 때려냈다. 프로 첫 홈런은 그해 5월 2일 이강철(당시 해태)에게 얻어냈다. 데뷔 첫해 김성래·양준혁 등을 제치고 주전 1루수가 됐다.

 96년 타율 3할(0.303)을 달성했으나 이승엽은 만족이 아닌 도전을 선택했다. 장타력을 살리기 위해 오른다리를 치켜드는 외다리타법을 익혔다. 3할 타율을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이었다.

 “폼을 바꾸자고 했을 때 두려움은 없었죠. 장타력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백인천 감독님의 생각과 맞아떨어졌거든요. 그땐 젊으니까 실패하더라도 도전하자는 생각이었죠. 믿고 따르니 결과적으로 성공했어요. 홈런수가 늘었잖아요.” 96년 9홈런을 친 이승엽은 97년 32홈런을 때려냈다.

 이승엽의 시선은 단순히 홈런수 증가에 있지 않았다. 최고를 꿈꿨고, 온 힘을 다했다. 물론 실패도 있었다. 하지만 실패 뒤 더 강해졌다. 98년 타이론 우즈(당시 OB)에게 역전당해 홈런 타이틀을 내준 경험이 99년 54홈런을 때릴 수 있는 힘을 줬다. 99년 54개로 오 사다하루(일본)의 한 시즌 홈런 신기록(55개)을 넘지 못한 경험이 2003년 56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자극을 줬다. 98년 실패 뒤 크리스마스에도 경산 볼파크에서 하루 종일 훈련을 한 일화는 유명하다.

 일본 진출도, 지바 롯데에서 요미우리로의 이적도 도전을 위한 선택이었다. 당시 주위 대부분은 안정적인 현실을 이야기하며 그를 말렸다. 하지만 이승엽은 과감히 앞으로 나아갔고, 하나씩 성공의 열매를 따냈다.

 “지금 하라면 아마 못할 겁니다. 나이가 드니 자꾸 안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니까요. 그래도 결정을 하면 성공이든 실패든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결과는 나중 일이죠.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도 없죠.”

 이승엽은 자신의 성공에 대해 “인복이 많아서”라고 한다. 야구를 하며 만난 스승과 선후배, 라이벌 모두가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승엽 본인의 노력이 동반돼 가능한 일이었다. 이승엽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일찍 선택했고, 그걸 더 잘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했다. 그 산물이 지금의 타격폼이다.

 “저하고 똑같은 타격폼을 가진 선수는 전 세계에 아무도 없죠. 저에게 맞는 최선을 위해 고민한 결과입니다. 프로 18년째인데 언제나 100점은 없죠. 항상 부족합니다. 그래도 프로라면 더 높은 목표를 위해 달려가야 하는 거죠. 한국 통산 최다홈런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돼서 ‘하겠다’고 한 겁니다.”

대구=허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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