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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생명을 선물하세요’ 대학가 광고 알고 봤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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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체 쇼핑
도나 디켄슨 지음
이근애 옮김, 소담출판사
312쪽, 1만5000원

“도와주세요. 생명을 선물하세요.”

 스페인 어느 대학 휴게실에 걸려 있는 광고다. 난자를 구매한다는 내용이다. 가임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 20대 여성을 겨냥했다. 비슷한 광고가 미국의 대학신문에도 정기적으로 실린다. 말이 선물이지 사실상 상거래다. 난자 기증자에게는 최고 5만 달러, 평균 4500달러의 현금이 제시되기 때문이다.

 품질에 따라 가격도 다르다. 운동신경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고 키가 큰 금발이면 값을 더 쳐준다. 아기를 원하는 사람은 기증자의 유전적 특질에 따라 난자를 고른다. 쇼핑과 다름없다. 인간의 ‘소중한’ 몸이 백화점 진열장의 가방처럼 상품으로 둔갑하는 현장이다. 여느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도 작용한다. 좋은 특질을 갖춘 기증자 한 명에게서 한 번에 70개의 난자를 채취하려다 사망 직전에 간 적도 있었다니 말이다.

[일러스트=강일구]

 의료윤리학자로 영국 런던대 명예교수인 지은이는 전 세계적으로 인체의 조직과 난자, 심지어 유전 정보까지 이익을 창출하는 상품으로 사고 팔리고 있다고 고발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아무도 그 문제를 지적하는 일 없이” 인간과 생명의 조각들이 가공돼 거대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난자 거래는 작은 사례일 뿐이다. 2000년 12월 미국 뉴저지주의 어느 범죄조직이 화장을 앞둔 어떤 남자의 넓적다리뼈를 모두 적출해 치과용 임플란트 공급업체에 7000달러를 받고 팔아 넘겼다가 적발됐다. 외과의사와 장의사까지 개입됐다. 문제는 영국 BBC방송의 미국 특파원이었던 이 남자가 폐암으로 사망하기 이전에 암세포가 이미 뼈까지 전이됐다는 점이다.

 그의 딸은 시신 훼손보다 이를 통해 암세포가 딴 사람들에게 퍼질 가능성을 더욱 우려했다. 문제의 범죄조직은 5년간 1000구 이상의 시신을 훼손해 조직을 팔아먹은 것으로 드러났다.

 1976년 희귀 백혈병 환자였던 존 무어는 세포를 채취 당했다. 이를 배양한 세포주는 특허권을 인정받았다. 그 사용권은 무려 1500만 달러에 스위스 제약사인 산도즈와 생명공학 회사인 제네틱스 인스티튜트에 이전됐다. 무어의 유가족은 권리를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갖고 있는 사람이 임자’라는 판결이 난 것이다. 이처럼 특정 인물의 신체 일부분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면서도 이에 대한 권리는 딴 사람이 행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기고 있다.

 지은이는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자인 황우석 박사도 거론했다. 기증자가 모호한 난자를 바탕으로 줄기세포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인간 난자로 줄기세포를 만든 뒤 남은 배아를 ‘죽일’ 권리를 연구자가 가질 수 있는가”라고 따져 묻는다.

 2005년 세계 최초로 안면이식수술을 받는 프랑스 여성도 도마에 올렸다. 얼굴은 인체의 다른 장기나 부분과 달리 인간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러니 타인의 얼굴을 이식받은 사람은 누구의 정체성을 갖고 살 것이냐는 철학적인 물음을 던진다.

 지은이는 성형수술도 일종의 인체 쇼핑이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서 값싼 성형수술을 받고 얼굴을 되려 망치는 사람이 미국에서만 연간 100명은 족히 된다고 지적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인체 쇼핑에 따른 인간성 매몰이다. 인체 부분을 이용하는 의료기술이 아무리 훌륭해도 가격이 너무 비싸 보통 사람의 접근이 제한된다면 결국 의학의 이름으로 인체 부분의 상업화를 합리화하는 게 아니냐는 질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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