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푼돈도 방치하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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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매튜 디킨
한국HSBC은행장

장기화하고 있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바꿔놓은 믿음은 여러 가지가 있다. 미국의 신용은 절대불변한다는 생각, 중앙은행의 경기조절 능력은 무한하다는 신뢰 등이 대표적이다. 경기에 대한 시각도 어느새 변했다. 몇 년 전만 해도 경제가 규칙적이며 예상 가능한 주기로 확장하거나 수축한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이제 지나간 것 같다. 지난 15년간 세계 경제는 아시아 경제 위기에서 닷컴 버블 붕괴, 그리고 신용 경색까지 일련의 쇼크에 강타당했다. 수학자인 존 알렌 파울로는 “불확실성이 유일한 확실성이며, 불안정한 상황을 감수하고 사는 법을 아는 것이 유일하게 안전한 것이다”고 말했다.

 2012년도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1분기 때의 비교적 긍정적인 심리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유로존 문제의 해결책에 대한 기대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파울로 교수의 말처럼 언젠가 시장의 혼란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 또한 현명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필자가 은행에서 근무하면서 발견한 한 가지는 비즈니스에 자금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금융 원칙이 자주 간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중소기업에선 수금액이 지급액보다 더 많은데도 보고나 자금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기도 한다. CEO는 상품과 영업에만 전적으로 매달린다. 큰 변동이 없는 시장 상황에서는 비교적 큰 규모의 기업들도 잉여 자금을 여러 계좌에 분산한 채로 방치하는 경우가 있다. 영국 속담에 ‘푼돈을 아끼면 큰돈은 저절로 모이는 법이다’고 했다.

 그러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수익 예측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는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잘 운용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최우선 순위가 된다. 내부이전, 당좌대월 등은 훌륭한 솔루션이지만 아직도 기업자금관리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이 있다.

 규모가 큰 회사일수록 생산과 영업이 세계화돼 있고, 이에 따른 재무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이런 이유로 점점 더 많은 회사가 효율적인 자금관리에 대해 은행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기업의 현금순환주기를 단축하고 운용자금을 보다 원활하게 확보하게 해주는 결제·수금 플랫폼을 도입하고 있다. 은행은 은행의 시스템을 고객사 내부 시스템과 연동시키는 서비스를 늘리고 있다. 급여나 대금 결제, 계좌통합 등을 통해 유휴자금을 포함한 모든 기업 자금의 생산성을 높여주기 위해서다.

 기업도 여러 가지 이점을 얻을 수 있다. 자금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고 업무 속도와 효율성을 높여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이는 다시 기업이 해외 무역에서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은행에는 고객사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구축한다는 이점이 있다. 물론 시스템 통합에는 시간과 신뢰가 필요하다. 은행과 고객이 서로 불확실성을 줄이고 고객의 사업이 성장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가져야 가능하다.

 최근 HSBC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태지역 내 무역이 활성화되고 아시아·남미·아프리카와 중동을 잇는 남남(南南) 무역이 증가함에 따라 향후 5년간 아태지역 무역은 연 6.5%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국 기업엔 수익을 높일 수 있는 희소식이다. 하지만 기업의 성장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회사에는 경고 메시지일 수 있다. 결국 어떤 회사도 영업 증가 속도만큼 비용이 증가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미국과 유로존에 비해 아시아에서의 비즈니스는 어려움이 있다. 통화가 다양해 환 헤지가 필수라는 점부터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세금과 규제도 많은 편이다. 회사의 재무책임자는 뉴질랜드나 브라질, 인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간대를 가진 나라에 흩어져 있는 계좌의 자금을 관리해야 한다. 기업의 비즈니스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공급망을 최적화하고 거래처와 지사의 재무 정보를 파악해야 할 필요성도 커진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국제 무역은 성장할 것이라는 점이다. 필자가 만나 본 한국 기업은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거나 새로운 시장에서 이미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런 성장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관리다. 오늘 잉여자금을 통해 얻은 작은 수익이 미래엔 큰 차이로 돌아올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은행을 선택하는 것이다. 해당 지역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수많은 관련 규제에 대해 제대로 안내해 줄 수 있으며, 자본과 유동성이 풍부한 은행 말이다.

매튜 디킨 한국HSBC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