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군사대국화 재촉하는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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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본 총리 직속 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는 나라가 공격을 받았을 때 일본이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현행 헌법이 금지하는 행위다. 일본 헌법 제9조는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은 ‘국방군’이 아닌 ‘자위대’ 형태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해석을 달리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바꾸고 전쟁에도 나설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대국화를 향한 일본의 우경화(右傾化)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일본의 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을 점령한 주일미군사령부가 주도해 만든 헌법이다. 아시아 각국과 미국 등을 침략함으로써 막대한 피해를 입힌 잘못과 결국 두 차례의 원자폭탄 공격을 받고 패망한 경험을 반성하는 뜻에서 당시 일본 국민 다수에 의해 받아 들여졌다. 그 뒤 일본에선 우파에 의해 헌법을 개정하거나 해석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지만 다수 국민의 반대에 의해 무산돼 왔다. 1947년 제정된 헌법이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은 배경이다. 이에 따라 이번에 제기된 ‘집단적 자위권’ 필요성도 일본 정부가 공식 채택하기까지 적지 않은 논란을 거쳐야 할 전망이다. 현재로선 평화헌법이 개정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우려되는 것은 군사대국화를 향한 일본의 발걸음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신예 스타 정치인으로 떠오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은 일본의 핵무장을 서슴없이 주장하고 있고 여야 정치인 다수가 보수 강경노선에 투항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얼마 전 일본 의회가 원자력기본법을 날치기 개정함으로써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이런 분위기 탓에 가능했다. 최근 2~3년 사이 무기수출, 우주의 군사적 이용, 자위대 기동성 강화 등의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보수 정당인 자민당은 오는 9월로 예정된 총선을 겨냥해 헌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상황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우리에겐 악몽이다. 제국주의 일본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40년 가까이 받아야 했던 우리로선 최대한 경계하고 견제해야 할 일이다.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군사대국으로 탈바꿈한 일본은 중국과 대립을 격화하면서 역내 긴장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고 두 나라 사이에 놓인 한국은 커다란 안보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 통일에도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크다. 단기적으로도 최근 ‘정보보호협정’ 파문에서 보듯 한·일 간 원활하고 정상적인 협력관계 구축이 갈수록 힘들어질 전망이다. 일본의 우경화 바람과 군사대국화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대비책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