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유주열] 홍콩의 “차이나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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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회귀(주권반환) 15주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빅토리아 하버가 보이는 어느 글로벌 금융회사의 36층 회의실 분위기는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과거 고수익을 올리던 금융 전문가들의 무용담으로 활기 찬 분위기와 대조적이었다.

홍콩의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세계경제의 악화로 타격이 크다. 영업실적이 최근 몇 년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기업공개(IPO)등 일거리가 많지 않으니 홍콩에서 버틸 재간이 없다. 그나마 일거리를 주는 베이징이나 상하이로 사무실을 옮겨야 할 판이다.

본사의 경영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홍콩에 주재하고 있는 간부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베이징이나 상하이로 사무실을 옮긴다면 우선 가족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홍콩에는 영어로 다 통하지만 대륙에서는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고는 시장도 보기 어렵다.

자녀 교육을 위한 외국인 학교가 대륙에도 많다고 하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홍콩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대기 오염은 어떻게 하나? 항상 안개가 낀듯한 스모그현상으로 어린애들의 기관지가 걱정된다. 병원 시스템이 많이 개선되었다하나 불안은 여전하다.

주택사정은 어떨까? 홍콩은 사무실과 아파트가 혼재되어 있어자동차 없어도 출퇴근이 가능하지만 베이징이나 상하이는 국제학교가 주로 교외에 있어 자녀들의 통학을 위해 학교 가까운 곳에 거주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회사로 이동하는 거리가 간단치 않다. 자동차라면 교통정체로 길에 허비하는 시간이 대단하고 지하철등 대중교통은 외국인이 사용하기에는 아직 일러 보인다.

그리고 중국대륙의 금융시장은 규제도 많고 각종 꽌시(關係)로 사업하기 용이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는 글로벌 금융회사들로서는 극복할 수 밖에 없는 사안들이다. 그들은 빠르면 10년 이내 지금의 홍콩 같은 세계 금융중심이 베이징과 상하이에 들어서게 될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홍콩에서 새로운 “차이나 러시”가 중국대륙을 향하고 있다.

홍콩회귀 15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5년만에 홍콩을 찾았다. 5년전 베이징 올림픽을 1년 앞 둔 2007년도의 홍콩 분위기는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나 2012년의 홍콩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바우히니아(홍콩을 상징하는 양란)의 빛깔도 조금씩 바래고 있는지 모른다. 홍콩이 자랑하는 글로벌 금융기업은 차츰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대륙에서 온 중국사람들로 채워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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