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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못 간 아기 무상보육 … 국회발 포퓰리즘의 재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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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4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구립 서초장미어린이집. 1~2세반 아이들이 낮잠에서 깨어나자 보육교사가 아이들에게 찐 감자와 우유를 나눠준다. 손재순(59·여) 원장은 “10일 보육 예산이 바닥나면 보육교사 인건비와 간식비 등을 지출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학부모는 더하다. 직장맘 유혜정(30)씨는 “(정부가 무상보육을 손보겠다는데) 왜 이랬다 저랬다 하나.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예산이 바닥난다면 정책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갑작스레 0~2세 무상보육을 시행하면서 전국 지자체 중 서울 서초구가 가장 먼저 백기를 들었다. 서초구에 부유한 가정 자녀가 몰려 있어서다. 보육료 지원 대상이 소득 하위 70%에서 올해 모든 자녀로 확대되면서 대상자가 1662명에서 5113명으로 세 배가 됐다. 당초 예산 85억원이 10일 바닥난다. 올해 약 124억원이 부족할 전망이다. 8월 송파구, 9월 강남구 등 줄줄이 돈주머니가 고갈된다. 서울시는 다른 예산으로 급한 불은 끄겠다지만 구체적인 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를 합치면 약 6000억~7000억원이 부족하다. 이들이 줄줄이 손을 들면 학부모들의 불안도 점점 커지게 된다.

 기획재정부 김동연 2차관이 제도 시행 6개월 만인 3일 부잣집 아이를 무상보육에서 빼겠다고 나온 이유 중 하나가 지방정부의 비명 때문이다. ‘국회발(發) 무상보육’ 때문에 집에서 키우던 0~2세 아이 13만~14만 명이 어린이집으로 쏟아져 나왔다. ‘공짜 보육’의 효과다. 구립 서초장미어린이집에도 대기자가 50% 늘었다.

 무상보육은 국회 작품이다. 출발은 민주당이다. 지난해 1월 무상보육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그때만 해도 무상급식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8월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발동을 걸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하자 다급해졌고 11월 이주영 정책위의장이 불을 붙였다. 그 이후 잠잠하다 12월 말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전격적으로 결정됐다.

당시 예결위원장 겸 계수조정소위원장은 정갑윤(한나라당) 의원, 예결위 간사는 장윤석(한나라당) 의원과 강기정(민주당) 의원이었다. 당시 회의에서 민주당 주승용 의원만 “0~2세는 덜 급하다. 3~4세가 더 급하지”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대개 복지예산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증액하는데 지난해 가을 복지위조차 종전 기준(소득 하위 70%까지 지원)을 유지했는데도 예결위가 무상보육으로 간 것이다.

건국대 김원식(경제학) 교수는 “사회정책은 단 1원의 차이가 발생해도 5000만 명이 영향을 받는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은 더 이상 안 된다”며 “주요 정책은 누가 주도한 건지 실명제를 하고 냉정히 평가받아야 한다. 정책에 관여한 학자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이모(35·여)씨는 “보육료 지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셋째를 낳으려 했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정치권과 정부가 무책임하게 무상보육을 서둘러 엄마들만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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