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에게 훈계 들은 MB 사촌처남 김재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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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홍

“피고인은 영부인의 친척으로서 더욱 조심해야 하는데도 경솔하게 처신해 누를 끼쳤습니다.”

 4일 오전 10시30분 서울고등법원 403호 법정. 법대에 앉은 성기문(사법연수원 14기) 형사 4부 부장판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휠체어를 타고 증인석에 나온 김재홍(73) 전 KT&G복지재단 이사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성 부장판사는 “저축은행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많은 국민의 피눈물을 흘리게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합니다”고 답했다.

 성 부장판사는 “고령이고 건강이 나쁘다고 선처를 바라는 게 떳떳한가”라고 재차 물었다. 김씨는 “떳떳하지 못합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성 부장판사는 “그럼, 교도소에서 속죄해야 될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김씨는 기도하듯 꽉 부여잡았던 손을 맥없이 풀며 “네”라고 답했다.

 제일저축은행 유동천(72·구속 기소) 회장으로부터 ‘저축은행 영업정지 무마’ 청탁 대가로 3억9000만원을 받아 구속 기소된 김씨는 이날 항소심 재판에서 금품수수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재판부의 선처를 원했다. 혐의사실을 부인하던 1심과 달리 한풀 꺾인 모습이었다. 변호인은 “김 전 이사장이 추징금 3억9000만원을 예치하고 속죄의 마음으로 제일저축은행에도 3억9000만원을 갚았다”며 “고령인 만큼 병보석을 허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 부장판사는 “지위를 이용해 3억9000만원이나 받고서는 1심에서 반성도 안 하다가 이제 와 반성하는 건가”라고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김씨는 최후진술에서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다”고 거듭 사죄했다. 그러나 성 부장판사는 “물의가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며 김씨의 말을 바로잡았다. 김씨의 병보석 신청에 대해서도 “고혈압이나 두통·천식 등은 만성질환으로 생명에 지장이 있는 병은 아니다”며 “수감생활이 어려울 정도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며 부정적 의견을 보였다. 대통령의 사촌처남인 김씨는 1심에서 알선수재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선고공판은 다음 달 17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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