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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영화 질주] '초콜릿'

중앙일보

입력

어제는 화이트데이. 많은 여성들이 남자 친구나 남편으로부터 초콜릿.사탕을 선물받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사랑의 정표로 흔하게 주고 받는 초콜릿이지만, 한때 초콜릿은 설탕.후추와 함께 전쟁.살인도 일으켰던 진귀한 물건이었다.

18세기 유럽에선 남녀의 사랑을 촉진하는 최음제로 알려져서 영국의 찰스 2세는 "초콜릿이 국민을 문란에 빠지게 하는 온상" 이라며 시음을 금지했을 정도다.

초콜릿의 마법은 최근 개봉한 라세 할스트롬의 영화 '초콜릿' 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북풍과 함께 날아온 신비한 여인 비엔나(쥘리에트 비노슈)는 딸과 함께 1백년된 프랑스 마을에서 초콜릿 가게를 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엔나가 만든 초콜릿을 한번이라도 맛본 사람들은 인생이 1백80도 바뀌게 된다. 비엔나가 사람들의 심리상태에 꼭 맞는 초콜릿을 내밀었던 것(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에겐 톡 쏘는 술이 든 초콜릿,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잠긴 소년에겐 진한 다크 초콜릿 등).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초콜릿' 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부분은 여배우의 앙상블이다. 쥘리에트 비노슈.레나 올린.케서린 모스.주디 덴치 등 한때 스크린을 녹였던 섹시한 그녀들이 중년의 나이를 훌쩍 넘겨 우리 앞에 다시 섰다. 아이를 낳아 무뎌진 허리를 굵은 벨트로 당당하게 동여매고서.

비엔나는 무신론자에다 떠돌이에 미혼모다. 그래서 시장은 그녀가 초콜릿에 마약을 넣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초콜릿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조금만 열을 가하면 쉽게 녹고 어떤 틀에 들어가서도 다른 재료를 쉽게 받아들이는 초콜릿은 유연하고 열린 삶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초콜릿' 의 여배우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혹은 이혼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스크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비관습적인 힘과 유연한 삶이야말로 영화의 메시지를 육화하는 본보기는 아닐지□

국내에선 나이든 여배우들이 출연할 작품도 많이 기획되지 않고, 또 시집을 가면 잘 나가던 여배우도 스크린에서 실종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이혼을 발표하고도 스크린을 계속 달구는 이미연 같은 배우에게서 뭔가 달라진 징후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도 언젠가 문희.정윤희.오현경이 한 무더기로 주연하는 '초콜릿' 같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일까□

인생이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도는 초콜릿 한 상자라면, 여배우의 연기도 세상을 거쳐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후에 완성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원기를 주는 현대판 비아그라 영화 '초콜릿' . 풋복숭아 같은 처녀들을 제치고 일어서는 아줌마 배우들의 맹활약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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