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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리타 리쿠 〈딸기와 초콜릿〉

중앙일보

입력

루이비통, 에르메스, 샤넬, 구찌, 베르사체. 바로 이름만 들어도 왠지 빛이 날 것 같은 명품들의 브랜드네임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도 흔한 이미테이션 핸드백쯤은 숱하게 봐왔을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가는 한국 사람들은 현지의 여행사, 호텔 민박집 등에서 기묘한 아르바이트(?)를 제의 받는다고 한다.
일본인의 브랜드, 그것도 세계 명품 애호는 이미 유명하다.

그래서 돈을 주고 남이 사는 것처럼 루이비통 같은 브랜드 제품을 사서 일본사람들에게 주는 일을 한국인들에게 부탁한다는 것이다.
생산되는 물건은 한정돼, 수량은 딸리고 갖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 일본인들이 벌이는 해프닝인 것이다. 벌써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지도 한참인데, 여전히 그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젊은 여자들의 광적인 선호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이 어린 여고생까지 이렇게 정신없이 브랜드를 사들이는지는 이 만화를 보고야 알았다.

주인공 여고생 나카타니 아미는 마지막 남은 가방을 사려다 어떤 남자에게 선수를 빼앗긴다. 다행히 워드 검정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악필인 그의 원고를 정리해주고 원하던 가방을 얻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남자, 타다라 쿄스케. 아미는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 어른에 직업은 무시무시하게도 포르노 소설가이다.

자꾸 유유하고 폼만 잡고, 어쩌다 상냥한가 싶으면 적당히 짓궂은 그에게 끌리는 아미. '이 아저씨 다 알면서 놀려 먹는 거야' 하며 항상 나중에 분해하는 아미가 귀엽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사귀게 되지만, 여러 가지 말썽이 둘의 사랑을 방해하기만 한다.

여기서 쿠바 영화 〈딸기와 초콜릿〉을 빌려쓴 제목의 '딸기'는 아미의 팬티 무늬, 초콜릿은 어른 남자가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유일한 과자를 뜻한다. 그만큼 나이부터 생각까지, 두 사람의 갭이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직업이 직업인만큼 야한 소설을 쓰는 쿄스케의 원고를 워드 작업하면서 큰소리로 읽는 아미에게 쑥스럽지도 않으냐고 묻자, 어차피 현실감이 없다면서, "나에게는 완전히 SF나 마찬가지거든요"라고 태연히 대꾸한다.

그럭저럭 긴장의 선을 잘 유지하다 마지막 결말부분이 엉성한 것이 흠이지만, 이 작품을 보면 예전의 순정만화와는 전혀 다른 현재의 만화 경향을 잘 알 수 있다. 요즘의 만화경향답게,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적당한 코믹, 적당한 심각히 반복되면서 만화적 재미에 충실하다.

특히 쿄스케가 임시 고전강사로 아미의 학교에 왔을 때, 선생님을 놀리려는 남학생들을 다루는 솜씨는 볼만했다. 성경험을 얘기해 달라고 하니, '그런 것보다 고전 소설 〈겐지 이야기〉-우리의 춘향전쯤 되는 일본의 고전-가 더없이 재미있는 포르노그라피'라고 받아넘겨 학생들에게 겐지 붐을 만드는 대목은 무척 재치 있었다.

처음 쿄스케와 사귀게 되었을 때, "어떤 브랜드 가방보다 대단한 걸 손에 넣었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아미의 대사는 결국, 사랑도 브랜드로 하나씩 전부 갖춰놓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해석이 된다.

금지된 사랑, 최고의 선물, 어른스런 애인, 유명하고 남들이 동경하는 그의 명성, 마지막엔 선망받는 결혼이라는 브랜드까지.
인기 많은 그를 따라 다니는 많은 여자들에게 질투하면서 '나는 오리지널이고 그들은 이미테이션'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는 발상은 전혀 어른스럽지 못하다.

임신인줄 착각해서 35살에 십대의 모델 같은 딸을 가진 자매 같은 모녀를 상상하며 황홀에 젖어 있자 친구들은 완전히 현실도피라고 일침을 놓을 만큼 철이 없다.

그러나 아미도 여러 일을 겪으며 성장한다. 에르메스의 제인 버킨, 캘리 백, 빅토리아, 발리의 토드백 루이비통의 베르니 라인. 샤넬의 코사지 등등 이 만화는 만화가 자신이 진짜 브랜드 애호가로서 박사급인 명품 정보도 간간이 나온다.

나중에 느끼한 아저씨 소가베가 뭐든지 다 사주겠다고 유혹하자 ;내가 조금씩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브랜드도 저 사람에게 받으면 쓰레기가 되버려' 라는 것을 드디어 깨닫게 된다.

단순한 브랜드 중독으로 보여도 아미에게도 소신이 있다. 자신이 브랜드에 어울리는 멋진 여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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