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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의 시시각각

이석기 의원직 제명,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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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이석기·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의원직 제명을 추진하기로 했다. 두 당을 합치면 277석이니 제명에 필요한 3분의 2를 넘는다는 것이다. 여러 면에서 이런 발상은 옳지 않다. 당의 문제와 국회의 문제를 혼동하는 것이다. 확실한 법적 증거 없이 동료의원의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건 정치적 행패다. 유권자의 선택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석기·김재연은 4·11 총선 비례대표 경선에서 2번과 3번을 받았다. 당의 비례대표 당선은 6명이어서 두 사람은 국회의원이 됐다. 그런데 선거 후에 경선이 부실·부정이었다는 논란이 생겨났다. 현장투표에서는 대리·이중투표가 있었고 온라인에서는 같은 컴퓨터로 수십 또는 수백 명이 특정 후보를 찍었다는 것이다. 당은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우선 지도부가 사퇴했다. 그리고 경선후보 14명도 사퇴하라고 의결했다. 그런데 이석기·김재연이 거부했으며 사단(事端)은 여기서 시작됐다.

 진보당 사태의 근본 문제는 조사 결과가 ‘결정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석기가 포함된 구(舊) 당권파는 두 차례 진상조사를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 게다가 2차 진상조사위원장이 결과를 거부하며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조사결과는 구체적인 책임자를 적시하지 않아 혼란을 더 키우고 있다. ‘총체적’ 부실·부정이라고 했을 뿐 특정인의 잘못은 밝혀진 게 없다. 그런데도 당은 이석기·김재연이 ‘사퇴’ 결정에 따르지 않았다고 제명했다.

 이·김 사건은 특정 정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논란’이다. 당내에서조차 두 파가 갈려 진실게임을 벌이는데 다른 당의 국회의원들이 무슨 수로 판결을 내리겠다는 것인가. 제명을 주장하는 이들은 “부정 경선으로 당선된 이는 국회의원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 말은 맞다. 그런데 누가 ‘부정’을 입증할 것인가. 이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검찰이 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수사에서 혐의가 나와 법원이 금고(禁錮)형 이상을 판결하면 이석기·김재연은 의원직을 잃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한 모든 면에서 두 사람의 의원직은 법적으로 유효하다. 그런 자격을 다른 정당 의원들이 숫자를 이용해 박탈하려는 게 옳은 일인가. 이는 순리에 맞지 않고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 다수의 정치적 폭력이 법과 이성(理性)을 누르면 어떤 의원이든 그런 폭력에 당할 수 있다. 부메랑이 되는 것이다.

 진보당 비례대표후보는 20명이다. 14명이 경선에서 뽑혔고 6명은 당이 전략공천했다. 당시 지도부는 경선을 그 모양으로 만들 정도로 완벽하게 부실한 지도부였다. 그렇다면 그런 지도부가 했던 전략공천은 괜찮았을까. 6명 중에는 ‘문제 후보’들이 있다. ‘가카 빅 엿’이라며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조롱했던 판사가 있다. 1975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강종헌 후보도 있다. 80년대 운동가 김현장씨는 “강씨는 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은 사실을 나에게 털어놓았다”고 주장한다. 이석기·김재연이 제명되면 ‘빅 엿’ 판사와 간첩 출신이 의원직을 승계한다. 이것은 정의로운 일인가. 대한민국 국익에 맞는가.

 이념과 국가안보로 보면 이석기는 ‘불량(不良) 의원’이다. 그는 반국가단체 민혁당 활동으로 징역을 살았다. 사면·복권되어 의원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종북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는 북한 3대 세습은 내재적(內在的)으로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종북(從北)보다 종미가 더 문제라고 하며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라는 주장까지 한다. 그런 이가 국회를 활보하고 국민세금으로 세비를 받는다는 현실에 분노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불량이어도 법적으로 그는 국회의원이다. 법이 그를 보호하는 한 한국사회는 그를 인정해야 한다. 설사 그가 악마라고 해도 그를 다루는 방법은 비(非)악마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이석기 같은 비뚤어진 이념운동가가 넘볼 수 없는 자유민주사회의 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