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군사외교 ABC 망각한 한·일 정보보호협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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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호 02면

한·일 간의 첫 군사협정인 정보보호협정(GSOMNIA)이 지난달 29일 서명 50분을 앞두고 취소됐다. 한마디로 국가적 망신이다. 국무회의 비공개 통과(26일) 뒤 외교안보 라인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당국자들이 군사외교의 ABC나 알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국방부는 일본의 시긴트(signal information)를 안정적으로 제공받기 위해 정부 간 협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뿌리 깊은 반일 감정과 함께 한·미·일 삼각동맹에 대한 우려, 12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움직임 등을 두루 감안했어야 마땅하다. 공론화와 여론 설득에도 서툴렀다. 바깥 외교 못지않게 안방 외교도 중요한데, 한·일 관계와 군사 외교의 특수성·민감성을 망각한 것 같다.

정부는 속사정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할지 모른다. 한·일 군사협력은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을 통해 진작부터 진행됐었다. 그게 흐지부지된 만큼 이를 부활하거나 한·미·일 안보위원회(TSC)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한·일 군사협정의 첫 단추나 마찬가지인 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할 만큼 상호 신뢰가 구축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에선 구호 성금 열풍이 불었지만 불과 한 달 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교과서 사태로 인해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 협정을 계기로 동북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심화된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남 위협과 도발을 반복하는 북한에 맞서기 위해 동북아에서 대북 정보협력 상대를 찾자면 일본밖에 대안이 없다. 중국·러시아와는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지만 군사정보 협력은 요원하다. 특히 중국은 북·중 군사동맹을 재정비하고 있지 않은가. 예비역 장성들이 “전 세계에서 체계적으로 대북 정보를 수집하는 나라는 한·미·일 세 나라뿐”이라고 말하듯 실사구시 차원에서 협력 대상에는 한계가 있다. 일본의 월등한 정보 수집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한국을 지원해온 미국의 수십 기 첩보 위성엔 못 미치지만 일본은 현재 지상 60㎝ 크기의 물체를 식별하는 첩보위성을 4기나 띄워 주야로 2기씩 한반도를 24시간 감시한다. 한국은 최근에야 70㎝ 물체를 식별하는 아리랑 3호를 궤도에 올렸지만 이는 첩보위성이 아니다. 한국은 인적 정보(휴민트)가 일본보다 낫지만 일본도 조총련에서 그런 정보를 수집한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보보호협정의 필요성은 남아 있다. 문제는 국민이 납득하고 여야 정치권이 동의하는 것이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다시 밀어붙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동북아 안보협력체를 결성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다만 이번 논란이 우리 군사외교를 한 단계 성숙시킬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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