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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석 공짜, 밥 주고 용돈까지 주는 병원…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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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강일구]

지난 19일 경기도 부천시의 한 내과. 부천의 투석병원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기 병원이다. 오후 5시가 되자 신장 투석을 마친 환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병원에서 투석을 받는 환자는 180명. 이렇게 환자가 몰리는 것은 진료비를 받지 않는 ‘공짜 병원’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투석을 받기 위해 상담하러 왔다고 말을 꺼내자 간호사는 “저희 병원에 다니시면 병원비가 한 푼도 들지 않을 거예요”라고 자랑한다. 상담을 마친 뒤 간호사가 안내한 곳은 병원 한쪽의 뷔페식 식당. 투석을 마치면 식사도 공짜다. 이 병원은 얼마 전까지 환자들에게 한 달에 15만원씩 용돈도 줬다. 간호사는 “검찰이 수사에 나서 지금은 돈을 줄 수 없다. 아쉬워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어떻게 이런 친절한 병원이 있는 것일까? 투석병원 입장에서는 환자가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환자 한 명을 유치하면 진료비를 안 받아도 돈이 남는다는 셈법이 적용된다. 환자가 한 번 투석을 받는 데 드는 진료비는 15만원. 이 중 90%인 13만5000원은 건강보험공단이 내고, 환자는 나머지 10%(1만5000원)를 부담한다. 환자 한 명을 유치하면 한 달에 160만~180만원의 고정 수입이 보장된다. 이 병원이 투석 환자로 매달 버는 돈은 2억4000만원. 수입을 올리려는 병원 입장에서는 고가의 투석 장비를 놀리기보다 이익을 조금 줄여도 환자를 많이 확보하는 게 남는 장사다. 한마디로 박리다매(薄利多賣)다.

 의료법상 환자에게 병원비를 깎아주거나 환자에게 돈을 주는 것은 불법이다. 병원 간 경쟁이 과열되면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환자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병원에서 지난해 9월 투석을 받던 환자 백모(60)씨가 사망했다. 투석 도중 갑자기 혈압이 떨어졌는데도 환자는 응급처치를 받지 못했다.

 투석은 망가진 신장 대신 기계로 몸 안의 피를 뽑아내 4시간 동안 필터로 걸러주는 일이다. 혈액이 몸 안팎을 오가기 때문에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는 건 흔한 일이다. 투석 과정을 전문 의료진이 꼼꼼히 챙겨봐야 하는 이유다. 백씨가 숨질 당시 이 병원엔 투석 전문의가 한 명도 없었다. 간호사들이 뒤늦게 응급처치에 나섰지만 회복하지 못한 채 숨졌다. 당시 함께 투석을 받은 환자 김모씨는 “전날이 생일이어서 함께 노래방에 갈 정도로 건강했는데 갑자기 죽었다”며 “간호사가 응급처치를 하는데 뭐가 되겠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무료 투석을 받다가 건강이 나빠져 대학병원을 찾는 환자도 있다. 한양대병원 인공신장실 이창화 교수는 “무료 병원에서 몸을 망치고 오는 환자들이 많다”며 “심한 환자는 폐에 부종이 생겨 응급실로 옮긴 후 며칠 만에 죽기도 했다”고 말했다.

 신장질환 환자는 투석만 받는다고 건강이 유지되는 게 아니다. 약을 먹고 음식을 조절하는 등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무료 병원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자판기처럼 늘어선 기계에 환자를 눕혀 놓고 관리는 소홀히 한다.

 환자에게 쓸 돈이 영업비용으로 가기도 한다.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는 환자 20명을 데려오는 브로커에게 월급 150만원을 준 적도 있다. 3년 전까지 무료 투석병원을 운영한 안모씨는 “환자에게 돈을 받지 않는 대신 다른 지출을 최대한 줄인다”며 “약은 최대한 싼 걸 쓰고, 월급이 많은 전문의나 경력이 있는 간호사를 안 쓰는데 제대로 투석이 될 리가 없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무료 병원에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신장 장애라는 불치병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투석 환자에게 진료비 할인은 피하기 힘든 유혹이다. 하철언(64·서울 신림동)씨는 20년째 혈액투석을 받는 신부전증 환자다. 병이 악화되면서 신장 기능은 정상의 15%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주일에 세 번, 4시간씩 투석을 받지 않으면 혈액에 노폐물이 쌓여 죽게 된다. 일과 중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니 다니던 공기업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생활비와 치료비를 마련하는 것은 전적으로 부인의 몫이다. 투석비에 약값을 합치면 하씨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한 달에 60만원이다. 하씨는 “종교가 있어 이렇게 버텼지만 자살을 생각할 때도 많았다”고 말했다.

 투석이 삶의 희망마저 위협하는 건 하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 투석을 받는 환자는 5만8000명. 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신장 이식이다. 1만 명이 넘는 대기자에 기증자는 1000여 명에 불과해 환자 대부분은 평생 투석을 멈추지 못한다. 고장 난 신장 때문에 다른 합병증도 많다. 2008년 신장학회의 설문 결과 투석 환자 1인당 월 병원비는 평균 57만원, 네 명 중 세 명은 직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궁지에 몰린 환자는 질 좋은 의료보다 한 푼이라도 덜 드는 병원을 찾는다.

 의료법상 명백한 불법임에도 병원은 돈이 되는 투석 장사를 멈추지 않는다. 혈액투석학회의 최근 조사 결과 전국의 무료 투석병원은 100여 곳. 전체 투석병원의 40%가 불법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 이들 병원에 다니는 환자들은 질 낮은 투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조사 결과 투석을 하는 동네 병·의원 528개 중 204개에는 투석 전문의가 한 명도 없었다. 신장학회 손승환 투석이사는 “투석 환자에게 전문의의 관리는 필수”라며 “환자는 지나치게 많고 전문의는 한 명도 없는 병원은 진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무료 투석병원에 환자가 몰리다 보니 양심적으로 진료하는 투석병원은 어려움을 겪는다. 부천에서 투석병원을 운영하는 한 내과 원장은 “무료 투석 사실이 퍼지면서 환자가 급격히 줄었다”며 “이익만 생각하면 무료 투석을 하고 쉽지만 나를 믿는 환자를 배신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단속에 손을 놓고 있다. 무료 병원에 의지하는 환자들의 반발이 두려워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무료 투석의 실태는 알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들이 입을 닫고 있으니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환자의 딱한 사정을 악용하는 병원들의 잇속 차리기와 정부의 느슨한 단속이 불법 투석이라는 암덩어리를 키우고 있다.

안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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