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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위해 목숨 내놓은 참전용사들의 분노

미주중앙

입력

베트남유공자회 118명의 회원들 중 매주 10여명이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12일 모임에 참석한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자연인으로서 단지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을 뿐입니다. 조국, 대한민국이 싫어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세계 어디에 살든 대한민국의 장병으로서 젊은 시절 조국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은 국가유공자로 인정 받아야 합니다. 한국인으로 국적에 관계 없이 명예를 되찾고 싶습니다.”

지난 12일 오전 9시 반, 나일스 골프밀 쇼핑몰 내 식당가. 노란색의 ‘KOREAN-VIETNAM VETERAN’이란 글귀가 새겨진 검은색 모자를 쓴 한인 노인들이 하나 둘 유명 패밀리 체인점 레스토랑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건강한 모습이지만 걸음이 불편해보이는 노인도 눈에 띄었다. 1960~70년대 우는 아기도 이들 부대 이름만 들으면 울음을 그쳤다는 청룡?맹호?백마 부대 등 베트남 참전용사들이다.

이제는 백발의 60대 후반 노인들로 모두 대한민국베트남참전국가유공자 미중서부지회(회장 권철오?이하 베트남유공자회) 회원들이다. 매주 화요일이면 이곳에 모여 커피 한 잔과 한국산 과자를 앞에 놓고 전우애를 나누고 있다. 현재 회원은 118명이며 대부분 시카고 일원에 거주한다. 매주 모임에 참석하는 회원은 10~15명 정도다.

이들 베트남 참전용사들이 참전유공자에서 지난 2011년 3월 ‘국가유공자’로 승격됐다. 그러나 이들 중 한국정부로부터 국가유공자증서를 받을 수 있는 회원은 몇 명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회원들이 미국 시민권자로 대한민국 참전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적상실자’에 해당돼 국가유공자의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한국 보훈처는 2011년 3월 11일자로 미 시민권자에 대한 국가유공자증서 발급이 제외된다는 통보를 베트남유공자회에 보내왔다. ‘국가유공자’ 승격 이전에는 참전유공자증을 받을 수 있었다.

권철오 회장(ROTC 1기?맹호부대)은 “우리를 찾고 싶다”며 “조국이 필요로 할 때 우리들은 목숨을 바쳤다. 이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어디에 살든, 국적이 무엇이든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지금도 헌신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이는 존중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법은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문제”라며 “정권마다 대우가 다르다. 지난 정권까지는 시민권자도 참전유공자증서를 받았다. 하지만 2011년부터 국가유공자로 승격되면서 시민권자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치가 바뀌어도 기준을 같아야 한다. 정부의 일관성 있는 보훈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65세 이상의 베트남전쟁 등 참전유공자는 참전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제6조 제4항에 의거,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경우에도 참전 수당으로 월 12만원이 지급된다. 그러나 고엽제 후유증환자는 국적을 상실하면 수당지급이 중지된다.

최재현 부회장(맹호 부대)은 “개인의 질병이라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다”며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전우가 있지만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한국정부로부터 외면 당했다. 미국정부를 대상으로 피해자들의 보훈병원 이용을 건의하고 있지만 이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는 “사실 돈보다는 명예다. 회원들이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이유는 후손들에게 남겨 줄 군인으로서의 명예”라며 “미국으로 이민 와 열심히 살았다. 살다보니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것이다. 조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이는 자연인으로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유공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해 ▶전우들에게 실망과 명예를 훼손시킨 결정으로 ▶해외 동포에 대한 이중국적 및 참정권 부여 위배 ▶시민권자를 대상으로 한 정부관련 단체와 형평성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김종치 회원(맹호부대)은 ‘이런 식으로 참전용사를 대우하면 후세들에게 어떻게 애국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전쟁참전용사에 대한 예우는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역사로 볼 때 문(文)이 강했던 시대에는 전쟁으로 국민들이 고생했다. 하지만 무(武)가 대우를 받던 시대는 태평성대를 이뤘다”며 “한국인은 과거를 잘 잊는다는 미국정치인의 말처럼 오늘 날 한국 경제 발전의 토양이 됐던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헌신이 점점 잊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연인으로 시민권 취득했을 뿐
조국 지킨 우리의 명예 존중해달라"
베트남참전유공자 미중서부지회 용사들

현재 베트남유공자회 회원들은 대부분 1936년에서 45년생으로 연령은 65세에서 75세 사이다. 회원 중 몇 명은 고엽제를 앓고 있기도 하다.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라도 한국 국적포기자는 수당지급이 중지된다. 이는 ’고엽제후유증 질병이 고엽제와의 연관성이 규명되지 않았고 규명 될 때까지 해당 질환에 대해 수당 등을 지원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제정 된 법’이라는 것이 한국 보훈처의 설명이다.

김한성(백마부대) 회원은 “C46 수송기가 정글에 고엽제를 뿌리는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엽제를 뿌린 뒤 소이탄을 쏘면 정글 하나가 순식간에 없어졌다”며 “고엽제를 앓고 있는 전우들에게는 국적에 관계 없이 한국 정부가 보살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엽제후유증으로 동생을 잃은 김종치 씨는 “시민권자는 한국 정부로부터도, 미 정부로부터도 지원을 못받는다. 미 정부가 요청해 한국 국인들이 참전하게 됐다. 이들 시민권자에 대한 보상과 지원이 어느 쪽으로든 꼭 이뤄져야한다”고 말했다.

시카고 총영사관에 따르면 “보훈행정은 보훈처가 직접 해당자 혹은 단체와 연락을 취하고 있다”며 “또한 변경된 법도 총영사관을 통해 홍보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인 업무 파악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국적 포기에 따른 국가유공자 자격 상실은 6.25참전 용사들도 해당된다.

국가유공자란 = 참전유공자를 포함 군인 또는 경찰?소방 공무원 등 공적 임무를 맡아 목숨을 잃거나 다친 이들이 주요 대상으로 고엽제 후유증 피해자도 포함된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청서와 관련 서류를 보훈청에 제출해야 한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자격을 잃는다.

임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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