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아내 감금한 남편, 실종 신고한 이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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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3억원에 이르는 도박 빚에 시달리던 임모(41·구속)씨는 2009년 보험사기를 계획했다. 그는 일주일 동안 14개 재해상해특약보험에 가입했다.

첫달 보험료 440만원을 납부했다. 이후 3개 보험회사에서 중복 가입을 의심해 청약을 거절하자 범행을 서둘렀다. 예전에 일했던 기계설비공장의 철근절단기계로 왼쪽 손목을 절단한 것이다.

 손목을 자를 결심까지 했지만 직접 스위치를 누를 용기는 없었다. 도박장에서 알게 된 이모(36)씨를 끌어들여 그에게 기계 작동 버튼을 누르게 했다. 임씨는 “이씨가 호기심에 기계를 작동시켜 손목이 절단당했다”며 11개 보험사에 9억2500만원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는 결국 2억7700만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임씨는 이 과정에서 공범 이씨를 과실치상으로 고소한 후 벌금 300만원을 대납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임씨는 나머지 보험금 6억원을 더 타내려다 대책반에 덜미를 잡혔다.

 8년간 배우자를 감금해 실종 선고를 한 후 보험금을 타내려던 경우도 있었다. 모텔을 운영하던 강모(41)씨는 2003년 함께 일하던 직원 최모(30·여)씨가 카드 빚에 시달리는 걸 알고 보험사기를 계획했다. 강씨는 사망 시 60억원을 보상받을 수 있는 13건의 보험에 든 후 최씨를 숨기고 실종 신고를 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전처와 이혼한 후 최씨와 혼인 신고도 했다. 5년간 최씨를 꽁꽁 숨긴 강씨는 그 기간 동안 5000만원에 이르는 보험금을 꾸준히 납부했다. 이후 2010년 소재 불명 5년이 경과돼 법원의 실종 선고가 확정되자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24억원을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보험사기를 의심했고 2심 재판 중이던 지난 5월 최씨가 8년 만에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최씨는 8년간 원룸 또는 월세방에서 사회와 격리돼 감금당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 합동 보험범죄전담대책반(반장 허철호 서울중앙지검 형사 4부장)은 보험사기를 저지른 13명을 적발해 임씨를 구속하고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들은 자해·감금·허위 사망·방화 등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보험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사기행위로 타낸 보험금은 34억6600만원. 대책반은 이 같은 보험사기 피해액이 연간 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수사에선 사망한 가족을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 생존연금을 타낸 사례도 적발됐다. 홍모(74·여)씨는 1995년 오빠가 죽은 이후에도 ‘생존확인서’를 보험사에 제출하며 14년간 1400만원을 타냈다. 김모(49)씨도 2003년 아버지 사망 이후 보험회사에서 확인 전화가 오면 자신이 아버지인 척 연기해 3년간 300만원을 수령했다.

 대책반 관계자는 “생존연금을 부당 수령하거나 건강보험증을 불법 대여하는 등 신종 보험사기가 증가했다”며 “올해 말로 예정된 전담수사반 운영 기한을 연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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