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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움을 무거움으로 풀어주리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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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슈만(1819~1896)은 옛 독일 화폐인 마르크화에 등장했다. 슈만의 아내였고 브람스와 특별한 관계였으나 그녀 자신도 뛰어난 음악가였다.

“이렇게 고독한데 그래도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
77세의 클라라 슈만을 떠나보내고 비탄에 잠긴 63세 브람스의 토로다. 그로부터 브람스는 몇 개월 더 살지 못하고 간암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그사이 그는 클라라의 죽음을 애도하는 가곡을 썼다. 네 개의 엄숙한 노래.

제1곡 ‘사람이 짐승과 같나니 짐승이 죽는 것처럼 사람도 죽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제2곡 ‘태양 아래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보라. 나는 이미 죽어버린 죽은 자들을 아직도 살아 있는 산 자보다 더욱 복되다 하겠다.’ 제3곡 ‘쇠약하고 늙어 갖은 근심에 갇혀 아무런 바랄 것도 기다릴 것도 없는 곤궁한 사람에게 오, 죽음이여 너는 얼마나 가까운 것인가? 오, 죽음이여 너는 얼마나 기쁜 일인가!’ 제4곡 ‘지금은 우리가 거울을 통해 흐린 말 속에서 보지만 언젠가는 얼굴을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조각조각 알 뿐이지만 언젠가는 나를 아시듯이 내가 알 것입니다.’

성경에서 취한 노래의 구절들은 비통하다. 그녀가 죽기 다섯 달 전에 브람스는 멀리 있는 클라라의 집을 방문했었다. 그때 클라라는 브람스가 보내준 악보 가운데 피아노 소품 ‘인터메조’를 연주했다.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후로 브람스는 계속 황달 증세를 보였다. 식당에서 연주회장에서 자꾸만 잠에 빠져들었고 기력은 급격히 쇠약해져 갔다. 그런 와중에 마지막 작품을 썼다. 전곡이 죽음을 테마로 하고 있는 오르간곡 ‘11개의 코랄 전주곡’이 그것이다. 임종 직후에 찍은 사진이 남아 있는데 마치 까맣게 칠한 석고상 같아 보이는 얼굴이 너무 무심해 보인다. 그도 자기 죽음을 슬픔과 공포로 받아들였을까.

생의 어느 시점에 광막한 우주 속의 한 점일 뿐인 존재의 쓸쓸함이 느껴진다면 브람스 만년의 작품들을 들어야 한다. 네 개의 엄숙한 노래만이 아니다. 제4번 교향곡이 있고 클라리넷 5중주가 있고 여러 편의 가곡이 있다. 무거움을 무거움으로 해소하는 것이다. 쓸쓸할 때는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이 낫다. 처연한 심사에 사로잡혀 전 존재가 통증의 회로를 구성할 때 악기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브람스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내려가고 더 내려가면 이상한 에너지가 새로 생겨난다. 경험해 보았는가. 바닥에서 생겨나는 에너지. 그런 것이 있다.

기이한 바닥에서의 힘이 생겨나고 여전히 브람스 음악이 살갑게 남아 있다면 그다음으로 이성일이 쓴 두툼한 브람스 평전을 읽는다. ‘자유롭지만 고독하다’는, 후기 낭만주의자들의 인생관을 부제로 담고 있는 그 책. 내가 알고 있는 브람스 생애의 구체적인 면모는 상당수 이성일의 저서에서 취득한 것이다. 그 책은 어쩌자고 그토록 길게 많은 양을 브람스 죽음의 과정에 할애했을까. 지금도 나는 그 건조한 활자들을 악곡의 배열인 양 틈틈이 들쳐 보고는 한다.

어떤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은 인생을 두 번 산다고. 한 번은 실제의 삶을 살고 또 한 번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산다고. 브람스 음악은 마치 두 번째의 삶, 지나간 날을 설명하는 장치처럼 들린다. 지나간 날은 다시 오지 않는 날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지난날로 되돌아간다. 나 역시 오십 세를 넘으니 뇌리에는 언제나 그 운동장, 골목길, 혹은 여행지 또는 그녀가 뽀얗게 서린다. 부디 어떤 죽음도 두렵지 않기를!

브람스의 죽음은 성대했다. 30년을 산 빈에서는 이제까지 있었던 어떤 행사보다 크게 장례식을 치렀고 고향 함부르크의 모든 배들은 조기를 올렸다. 그리고 그가 사랑한 베토벤, 슈베르트의 곁에 묻혔다. 그러고 보면 그리 불우하지 않은 한 인생이었다. 10대 어린 시절에 학업을 중단하고 선술집 악사로 생계비를 벌어야 했던 고생을 제외하면 음악가로서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다. 게다가 만년의 그 엄청난 명성이라니! 그런데도 그는 왜 그처럼 고독해 했을까. 동시대인이 남긴 인물평대로 ‘고집스럽고 독설적이며 매우 둔한 성격’이라는 됨됨이 탓이었을까. 설마 결혼하지 않아서였을까.

건방을 떨며 말하자면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인류는 여러 인종과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 브람스라는 종족이 따로 있는 것이다. 브람스족은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서 황혼을 본다. 파릇파릇 피어나는 새순에서 상처 난 엽록소의 자취인 단풍을 읽는다. 사랑의 부재증명을 위해 미련한 사랑의 역사를 반복한다. 그러한 브람스족의 한국적 버전은 좌파도 종북파도 아닌 허무주의자로 귀착된다.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일전에 만난 중앙일보 편집국장이 그랬다. “김갑수 선생은 좌파가 아니라 허무주의자예요!” 그런가? 생이 아파 쩔쩔매는 세상의 허무주의자들이여. 그대들을 브람스족으로 명명하노라.

김갑수 시인·문화평론가 dylan@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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