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S(도스)는 죽었다"

중앙일보

입력

컴퓨터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축배를 들어야 하는 날이 왔다. 사용자, 개발자, 하드웨어 제조업체 모두가 코르크 마개를 터뜨리고, 옥상에서 환호성을 질러야 한다. 불꽃놀이와 자발적인 퍼레이드가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데스크톱부터 사이버 공간 구석구석을 살펴봐도 마이크로소프트가 OS 신제품 ‘윈도우 XP(Windows XP)’를 발표한 시점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상하리만치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당초 올 4분기에 발표할 예정이었던 XP가 발표됨에 따라 이에 수반된 또 하나의 최대 사건, 즉 철저히 뒤에 가려져 있던 한 동물이 사망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건은 최소한 마이크로소프트의 공식적인 마케팅 전략은 아니다.

빌 게이츠와 짐 알친 마이크로소프트 플랫폼 그룹 부사장의 장시간에 걸친 프리젠테이션은 XP의 단순화된 인터페이스, 확장된 네트워킹 기능, 대폭 강화된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조한 것이었다. 확실히 XP가 갖고 있는 이러한 모든 기능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쉽게 감동을 받지 않는 필자에게조차도.

그러나 필자를 정말 당황하게 한 것은 두 사람 모두 핵심적인 부분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두 사람의 장황한 홍보 프리젠테이션에는 한 가지 단어가 빠져 있었다.

현실 속에 뚫린 우주의 구멍과도 같은 존재인 ‘도스’이다. 윈도우 XP가 ‘도스를 위한 레퀴엠’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 “딩동, 도스는 죽었습니다”고 선언했어야 했다.

부디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게이츠와 알친이 정직하지 못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최대 약점은 아마도 유머 감각의 결여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이 창조해낸 과거의 OS를 너무 숭배하기 때문에 결코 이 약점에 조소를 보낼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근본적으로 고객들과도 정직하게 대화할 수 없는 것이다.

웹에 올라온 XP 발표를 보면서 1984년 매킨토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가 생각났다. 당시 필자는 애플 컴퓨터 CEO인 스티브 잡스가 어떻게 매킨토시 같은 가공할 만한 제품을 준비해왔는지 꽤나 궁금했었다. 필자의 추측은 스티브가 아마도 레거시 OS의 완전한 종말을 선언하기 위해 관을 준비하고, 무대 위에 ‘친애하는 죽은 도스’를 위한 파티를 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연출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낸 난해한 명령줄의 OS가 지난 10년 동안 소비자들을 괴롭혀 왔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도스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이 마치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자살이라도 한 것처럼 부끄럽게 여기고 있는 듯 하다.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XP가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도스로부터 자유로운 윈도우 NT 커널이 XP에 내장되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간 충돌이 발생할 때조차도 전체 OS가 다운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오직 기능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XP의 잠재 시장은 이미 지칠대로 지친 전세계 소비자들과 소기업들이며, 이들은 기능보다는 안정성, 신뢰성, 그리고 강화된 보안을 더 궁금해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95/98/ME에 비해 XP가 왜 더 안정적이고, 신뢰성이 있으며, 보안성이 보장되는지 설명하려면 다음 두 가지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지난 6년 동안 이들 OS를 진정한 통합 OS라고 홍보해 왔지만 결국은 근본적으로 결점을 갖고 있는 구식 플랫폼에 의존하는(이 점은 감추고 싶겠지만) 극히 이례적인 복잡한 그래픽 셀보다 약간 더 실용적인 OS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두번째는 이들 OS보다 고도화된 고가의 윈도우 NT/2000을 사용하는 기업 사용자들이 소비자 버전 사용자와의 끊임없는 충돌, 데이터 손실, 시스템 다운, 시스템 파괴자 및 도난자들에 대한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5년 동안 도스와 이로 인한 결점 때문에 골머리를 썩지 않고도 잘 견뎌왔다는 사실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금까지 이중(double) 표준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근거는 확실히 존재한다. 소비자 측면에서 보면 도스는 오랫동안 새로운 프로세서, 주변기기 및 소프트웨어의 초기 사용자들인 광적인 파워유저 부류에 속하는 게이머들의 보루 역할을 해왔다.

기업 영역에서의 치부라면 수 백만개의 도스 애플리케이션이 아직도 매일 플랫폼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실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플랫폼을 계속 유지하도록 마이크로소프트를 옭아매고 있다. 결국 블라디미르 레닌이 유리 상자에 누워있는 것처럼 도스 역시 마치 유용한 OS라도 되는 양 윈도우 안에 내장돼 있다.

도스는 이제 매장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의 애완동물에 사망 선고를 내리고 새로운 개인 컴퓨팅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것을 대대적으로 축하해야 할 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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