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1350개 기업이 세계시장 1~3위 … 우리도 강소기업 육성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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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21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세계 선도국가 도약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발표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영세 에이프로 대표, 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김승일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원,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안상훈 한국개발연구원 산업경쟁정책연구부장, 이봉석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부장, 최성호 경기대 행정대학원 교수, 김갑수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강정현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경제전망(Economic Outlook) 보고서에서 한국의 2016~2026년 장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연평균 2.4%로 내다봤다. 4~5% 성장을 예사로 여기는 한국으로선 달갑지 않은 소리다. 한국 산업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전망이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꿀 방법은 없는 것일까. 21일 오후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세계 선도국가 도약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경쟁력 있는 중소·중견 기업을 키우는 방식으로 산업 생태계가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는 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포스코경영연구소가 공동 주최했다.

토론회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안상훈 산업경쟁정책연구부장은 고성장 중소기업을 많이 배출해야만 우리 산업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제조업 분야에서 중소기업은 제조업 전체 고용의 80.1%를 차지하고 매출과 부가가치 측면에서도 중소기업 전체가 대기업들보다 10% 정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업체 수가 감소하고 규모도 영세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제조사업체 중 종업원 10명 미만의 기업 비중이 82%에 이른다. 독일(60.5%)·일본(52.5%)·미국(50.8%)과 큰 차이가 난다. 안 부장은 “전 세계적으로 정보기술(IT)·수송기계·반도체·자동차·전자제품 분야에서 고성장 중소기업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기업은 수출 위주로 숙련된 인적자본이 많고, 연구개발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도 이 같은 기업을 중점 육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핵심 소재·부품 산업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1년 현재 우리 기업들은 LCD(액정표시장치)를 보호해주는 TAC필름의 99.6%, 반도체용 금선(gold wire)은 80%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자동차 전자장치 국산화율도 10%가 채 안 된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 완제품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지고 한류가 확대되면서 품질경쟁력과 가격경쟁력을 갖춘 부품산업의 르네상스가 오고 있다”며 “이 기회를 잘 활용해야만 지속적인 산업선도국가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도 원가 중심의 기업생태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엔 낮은 노동비와 낮은 정책금융비용을 활용해 국가산업경쟁력을 키웠지만 갈수록 원가경쟁을 하는 업체와 산업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05년 233억 달러의 흑자를 냈던 중국과의 무역수지가 지난해 190억 달러까지로 줄어든 걸 대표적 예로 들었다. 김 교수는 “차별화된 설계기술과 디지털기술만 있다면 중국이 원가경쟁력을 앞세워 추격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봤다. 좋은 모델은 독일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는 선진국이면서도 저임금 신흥국들에 밀리지 않는 독일은 ‘히든 챔피언’들이 많다. 중소·중견기업이 전체 기업의 99.6%(367만 개)를 차지하면서도 이 가운데 세계 시장 점유율 1∼3위인 기업이 1350여 개나 된다.

 이와 같은 변화를 위해서는 정책적 변화가 시급하다고 참석자들은 주장했다. 안 부장은 신성장동력 산업과 관련한 기술인력 양성 정책을 중소기업인력 대책과 연계해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지난 50년이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시기였다면 앞으로 50년은 해외로 나가 먹거리를 만들어오도록 정책의 중심이 수출주도형 중소기업으로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반성장 정책 방향 선회 필요=이동근 대한상의 상근 부회장은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으로는 일자리 창출에 한계가 있고 산업 내의 기업 간 네트워크 경쟁력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동반성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중소기업연구원 김승일 선임연구위원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에 대기업들이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심화돼 기업 간 양극화가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단기이익을 중시하는 경영을 하다 보니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비용으로만 인식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동반성장정책이 무작정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보호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정만기 지식경제부 기획조정실장은 축사를 통해 “일부 중소기업 지원 법률들은 너무 보호에만 치우쳐 오히려 경쟁력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봉석 중앙일보 경제연구소 부장은 “정부가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규제를 만들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성호 경기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어느 일방의 이익을 저해해서는 진정한 동반성장이 불가능하다”며 “중소·중견 기업의 혁신을 유도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중소기업의 납품을 받는 대기업과 연관기관, 정부가 함께 업종별 유망 품목을 발굴하고 공동으로 기술과 시장을 개척하는 독일·핀란드형 시스템을 도입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지나친 중소기업 보호정책의 부작용 사례도 소개됐다. 일본의 경우 중소 판매상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소매업자의 출점을 오랫동안 막아왔는데, 그 결과 일본 유통업이 국제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위원은 “소비자 편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 간 신뢰관계가 형성돼야 동반성장 생태계가 제대로 만들어진다고 이 위원은 설명했다. 그는 “일본 대기업들은 1차 협력사의 주식을 보유하거나 임원을 파견해 경영상황을 체크해주는 방식으로 신뢰를 형성하고 있다”며 “경영 위기 발생 시에도 부품 가격 절감을 포함한 비용 경쟁력 제고 방안을 함께 논의한다”고 예를 들었다.

히든 챔피언 (Hidden Champion)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각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상위에 위치한 기업들을 일컫는다. 강소기업(强小企業·작지만 강한 기업)이라는 말과도 유사하다.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이 펴낸 책 『히든 챔피언』에서 비롯된 말이다. 지몬은 ▶평균 60년 이상의 기업 수명 ▶평균 연 매출액 4300억원 이상 ▶연 평균 성장률 8.8% 이상 ▶분야별 세계시장 점유율 33% 이상을 히든 챔피언의 공통점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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