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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센츄리 베스트 - (2) 한신 ; 라인업 (야수편)

중앙일보

입력

한신 타이거즈는 오랜 역사와 많은 스타 플레이어들을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리즈에서의 헹가래는 고작 1회에 그쳤었다.

이처럼 팀 성적이 크게 두드러지진 않아 (요미우리를 제외한 센트럴 리그 내 타팀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20세기의 팀에 뽑힐 선수들을 가려내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다. 특히 내야는 더욱 그렇다.

한신의 마지막 전성기라 볼 수 있는 1970년대 중-후반, 맹호 타선의 중심에는 가케후 마사유키 (3루수)와 후지다 타이라 (유격수)가 있었다.

바스, 오카다 등과 함께 `85 시즌의 전설을 만들어 내었던 가케후는 팀 역대 최다 홈런 1위 (349), 최다 타점 2위 (1,019)를 기록했으며, 후지다는 팀 역대 최다 안타 1위 (2,064), 최다 경기 출장 1위 (2,010)를 기록했던 슈퍼스타들이었다.

하지만 50년 전체를 두루 살펴보면 가케후와 후지다는 후보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팀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면면이 너무 화려했기 때문이다.

특히 동시대에는 리그 내의 최고 3루수로 통하던 '미스터 타이거즈' 가케후가 주전에서 탈락된 사실(?)은 너무나 안타깝다고 밖엔 설명할 길이 없다.

(1) 라인업

<포수> - 다부치 고이치(田淵 幸一 / 1969 ~ 78) ; '스윙할 때 왼쪽 무릎을 안쪽으로 잡아끌 듯 들어올리는 폼은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그렇게 해서 날린 타구는 언제까지나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일본의 유명 만화가가 자신의 칼럼에서 썼듯이 다부치가 역대 최고의 '홈런 아티스트'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상당수 존재한다.

`69 시즌 센트럴 리그 신인왕 출신이며, 10년간 한신에서 플레이 하면서 무려 320개의 홈런을 날렸다. `75 시즌엔 43개의 아치로 '홈런왕 15연패'를 노리던 교진의 오-를 꺾고 왕좌에 등극하며 자신의 성가를 드높이기도 했다.

베스트 나인을 5회 수상하였으며, 공격력 만큼이나 수비력 또한 만만치 않아 골든 글러브도 2회나 수상하였었다.

<1루수> - 랜디 바스(Randy Bass / 1983 ~ 1988) ; '사상 최강의 용병'으로 평가받는 선수. `85 시즌 우승에 절대적으로 공헌하였으며, 그가 남긴 시즌 타율 .389 (`86)는 역대 1위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특히 `85 시즌엔 .350 - 54홈런 - 134타점을, `86 시즌엔 .389 - 47홈런 - 109타점을 기록하며 '타격 3관왕 2연패'를 달성해내었다.

`85 시즌 부터 베스트 나인을 3년 연속 수상 하기도 했던 그는, `88 시즌 도중 많은 오사카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채 아들의 신병 치료차 돌연 미국으로 떠나고 말았다.

<2루수> - 오카다 아키노부(岡田 彰布 / 1980 ~ 1993) ; `80 시즌 신인왕 출신. '백스크린 3연발'의 마지막을 장식하므로써 역사의 한페이지에도 남게 되었다.

팀이 우승했던 `85 시즌은 본인에게 있어서도 최고의 성적을 올렸던 시즌으로, 3할 4푼 2리의 타율로 바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35개의 홈런과 101타점을 올리는 놀라운 공격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그 해의 골든 글러브와 베스트 나인은 그의 것이었다.

14년간 한신에서 플레이하면서 245개의 홈런과 822타점을 기록하였고, 팀이 하위권으로 전락한 80년대 후반에는 4번의 중책을 맡아 훌륭히 소화해내기도 했었다.

<3루수> - 후지무라 후미오(藤村 富美男 / 1936 ~ 1958) ; '초대 미스터 타이거즈' 후지무라가 가케후 마사유키를 누르고 타이거즈 '20세기의 3루수'로 선정된 이유는 바로 그가 작성하였던 기록들의 역사적 가치 때문이었다.

`50 시즌에 기록한 191개의 안타는 이후로 40여년이 훌쩍 지나서야 깨졌으며 (`94 시즌 이치로의 210개), `49 시즌에 기록한 46개의 홈런과 142개의 타점은 당시로선 상상도 하기 힘든 수치였었다 (특히 홈런은 전년도의 2배 가까운 수치). 리그 MVP에 1회, 베스트 나인엔 6회 선정되었으며 `48 시즌 10월 2일과 `50 시즌 5월 25일에는 사이클링 히트도 기록하였었다.

그는 혼자서 2회 이상의 사이클링 히트를 작성한 사상 3명 중의 한명이자 최초의 선수였다. 그의 등번호 '10'은 영구 결번이다.

<유격수> - 요시다 요시오(吉田 義男 / 1953 ~ 1969, 사진) ; 사상 최고의 유격수로 손꼽힌다. 유격수 수비를 한단계 발전 시켰다는 평을 들으며 (풋워크 및 송구 동작), 파워와 정교함이 돋보이는 걸출한 타자는 아니었으나 여간 잡아내기 힘든 스타일의 선수로써 팀의 1번 타자를 맡아 공격의 물꼬를 텄었다.

빠르고 재치있는 주루 플레이로 도루왕을 2회 차지했으며 라이벌로 평가되던 교진의 히로오카 다쓰로(廣岡 達郞)를 거의 매시즌 완벽히 제압하며 베스트 나인에만 9회 선정 되었었다.

베스트 나인 9회 선정은 일본 프로야구 사상 유격수 부분 역대 1위의 기록이다. 350개의 도루는 팀 역대 1위, 1864개의 안타와 2007경기 출장으로 이부분 팀 역대 2위를 지키고 있다.

등번호 '23'은 팀의 영구 결번으로 등록되어 있다.

<외야수> - 마유미 아키노부(眞弓 明信 / 1979 ~ 95) ; 본래 크라운 라이터 라이온즈(クラウンライタ- ライオンズ, 세이부의 전신)의 내야수였으나, 다부치가 상부의 지시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크라운에 트레이드 되었을 때 맞교환되어 한신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초기에는 내야수로 활약하였으나 곧 외야수로 컨버트, 장타력을 지닌 초특급 1번 타자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85 시즌 우승의 선봉이었으며, 16년간 한신에서 플레이하며 1674안타, 277홈런, 824타점, 139도루를 기록하였다.

이적 첫해인 79년 5월에는 사이클링 히트를 작성했었고, 83년에는 2루수로써, 85년엔 외야수로써 두 번의 베스트 나인을 수상하였다.

<외야수> - 가네다 마사야쓰(金田 正泰 / 1942 ~ 57) ; 후지무라 후미오와 함께 초기 타이거즈 타선을 이끌던 간판 타자. 교타자의 첨병으로써 1리그 시대 팀우승에 많은 공헌을 하였었다.

`46 시즌에는 타율 .347로 타격왕을 차지하였으며, 베스트 나인에도 3회 선정되었었다. 49년 4월 16일에는 사이클링 히트를 작성하기도 했었다.

16년의 선수 생활을 모두 한신에서만 보냈으며, 통산 1527안타, 55홈런, 568타점, 187도루를 기록하였다.

<외야수> - 다미야 겐지로(田宮 謙次郞 / 1949 ~ 58) ; 입단 초기 5년간은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으나, 타율 .300 - 7홈런 - 60타점 - 30도루를 기록했던 `54 시즌 부터는 팀의 주력 선수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이후 `59 시즌 퍼시픽 리그의 다이마이 오리온즈로 트레이드 되기 전까지 평균 3할과 120개의 안타를 양산해낸다. 요미우리의 슈퍼 루키 나가시마 시게오(長島 茂雄)의 방망이가 기승을 부리던 `58 시즌에는 3할 2푼의 성적으로 타격왕을 차지, 신인 타자 최초의 '타격 3관왕'의 꿈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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