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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되신 어머니 염습하며 눈물 납디다, 왜 그렇게 미워했는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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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소설가 김주영이 독자들과의 대화 이후 사인회를 열고 있다. 그는 “내 글쓰기의 바탕은 가난한 어머니를 향한 가슴 속 응어리였다”고 했다. [사진 문학동네]

“허공에 대고 ‘엄마’ 하고 세 번만 불러보세요. 눈물이 날 것 같지 않나요.”

 일흔셋 노(老) 작가의 눈이 촉촉해졌다. 순간 침묵이 흘렀다. 13일 밤 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소설가 김주영(73)씨가 독자들과 만났다. 작가의 최근작 『잘 가요, 엄마』(문학동네)가 반향을 일으키면서 마련된 자리였다. “어머니의 누더기 같은 삶”을 그대로 묘사한 이 소설은 출간 한 달 만에 3만 부 가깝게 나갈 정도로 폭넓은 공감을 이끌고 있다.

 이날 모임에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을 통해 응모한 독자 가운데 10명이 선정돼 참석했다. 작가는 소설에 다 담지 못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냈고, 독자들도 모두 자신의 어머니에 얽힌 일화를 털어놓았다. 어머니로, 엄마로, 그렇게 마음이 한 곳으로 고이는 중이었다.

 ▶김주영=어머니는 제게 감옥 같은 존재였습니다.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버림 받은 어머니, 평생 글자도 숫자도 볼 줄 몰랐고, 오로지 품팔이만 하며 살았던 내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누더기 같은 삶을 다 털어놓지 않고서는 감옥 같은 어머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털어놓을 필요가 있나 갈등이 되기도 했지만, 소설이 속임수를 써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이제는 홀가분합니다.

 작가는 열네 살에 어머니로부터 달아났다. 어머니가 빈털터리인 두 번째 남편을 맞이했을 즈음이다. 작가는 그 길로 집을 나가 홀로 밥벌이를 해결하며 문학을 익혔다. “애증을 심어준 어머니가 내 글쓰기의 자양분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평생 배신감과 증오의 대상이었던 어머니를 어떻게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을까. 소설에도 적혀있지 않은 이 대목을 독자들이 물었다.

 ▶김주영=2009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염습하던 순간이었어요. 수의로 갈아 입히는데 그때 아주 잠깐 어머니의 가슴을 봤죠. 그런데 어머니의 가슴이 겨우 흔적만 남아있고, 쪼그라들어 있는 거에요. 내가 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잠들었었는데, 저 가슴을 빨아가며 배를 채웠는데…. 눈물이 납디다. 저 모습이 내 어머니의 본체구나, 그런 걸 깨달았죠. 어머니가 죽고 나서야 발견하게 된 어머니의 참 모습이죠. 참 어리석은 자식이죠.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 이어지자 독자들도 저마다의 엄마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손효순(47)=우리 엄마는 사실 몹시 신경질적인 분이거든요. 자랄 때 부모님이 싸우는 걸 많이 봤는데 엄마가 악쓰고 욕하는 모습만 기억나요. 왜 우리 엄마는 저렇게 억셀까, 저런 엄마를 닮지 말아야겠다 싶었죠. 그런데 얼마 전에 그간 몰랐던 집안 사정을 알게 됐어요. 엄마가 왜 그리 악을 쓰며 살았는지 알 것 같았죠. 지금은 엄마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요.

 ▶이현정(40)=저는 엄마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서 대학을 서울로 왔어요. 방학 때도 한 번도 집에 안 내려갔죠.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몹시 아팠는데, 엄마가 서울에 올라 오신 거에요. 투덜대면서 서울역에 마중 갔더니 엄마가 몸집만한 등산 가방에다 김치며 전복죽 등 반찬거리와 이불까지 들쳐 업고 혼자 서 계시더라고요. 그 장면을 잊지 못해요.

  작가는 “어머니라고 하면 어딘가 엄격하게 느껴지는데 엄마라고 하면 정서적이고 문학적인 느낌이 든다. 엄마 이야기를 다 털어놓음으로써 내 문학이 더 도약했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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