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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만화] 일작가가 그린 우리 옛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일본 최고의 탐미주의 작가 스메라기 나쓰키의〈이조암행기(이조암행기)〉(비앤씨. 박세라 옮김)는 일본 만화로는 독특하게 조선시대 사랑과 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만화는 스메라기가 펴내고 있는 총 8권짜리 '오리엔탈 러브 스토리' 시리즈, 즉 동양의 설화나 민담을 토대로 쓰고 그린 사랑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이조암행기〉는 모두 4편의 독립된 스토리로 구성됐는데 이중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공원의 귀신>을 제외한 <원앙한><북방의 질풍><신세타령>은 암행어사 윤수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애절한 이야기들이다.

세 작품 모두 윤수기가 지방을 돌아다니며 경험한 일을 그렸는데 각각의 스토리는 윤수기가 가슴에 묻고 있는 애절한 사연과 비슷한 사건들이다.

내용을 보면 가난한 선비의 아내가 돈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을 사또에게 수청을 들어야 하고(<원앙한>) 정혼한 남자가 있었던 여인이 북방 여진족에 잡혀갔다 다시 돌아온다(<북방의 질풍>).

<신세타령>은 일찍 남편을 여읜 여인이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 하지만 시집의 명예욕때문에 마침내 희생당하는 이야기인데 윤수기가 겪은 슬픈 과거와 흡사하다.

윤수기는 송도 제일의 미녀를 아내로 두고 있었으나 임대감이란 사람이 그녀를탐냈다. 윤수기는 가문의 부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바쳐야 했고 암행어사가된 날 아내는 결국 자살했다는 것. 〈이조암행기〉는 일본 작가의 작품인데도 관직ㆍ과거제도, 여진족과의 관계 등조선시대 사회상을 정확히 묘사한 것이 놀랍다. 또 스메라기의 그림은 선이 아름답고 미려해 한 폭의 인물화를 보는 듯 정교하다.

〈이조암행기〉와 동시 출간된〈산에 사는 신〉의 표제작도 한국의 옛 설화를소재로 한 작품. 호랑이에 먹힌 뒤 산신령이 된 갑돌이와 촌장 막내딸 현아에 얽힌이뤄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다.

이 책에는 이밖에도 <월인가><약탈당한 딸><도화선><청루여인국> 이 담겨 있으며 이들 작품은 주로 옛 중국이 배경이지만 <약탈당한 딸>만 유일하게 중세 서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눈에 띈다.

오사카 출신인 스메라기는 90년 <뱀공주 이야기>로 데뷔한 이래 주로 중국 소재작품을 발표해 온 여류 작가. 남의 나라 이야기인데도 철저한 고증과 자료 조사로섬세한 묘사와 치밀한 구성을 보여 준다.

'오리엔탈 러브 스토리' 8권 가운데 아직 출간되지 않은 〈황토 깃발 아래〉 〈양산박과 축영대〉등 두 권도 곧 나올 예정이다.(서울=연합뉴스) 이성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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