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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OT때 인기" 대학서 콘돔강의 빗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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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그것 주세요….” 한때는 약국에서 쑥스러움을 감추면서 구입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는 편의점에서 취향에 따라 골라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입에 올리기엔 민망한 상품이다. 알록달록 갖가지 색깔에 향기까지 산뜻한 콘돔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약국에서 이것을 구입할 때 ‘젤리’ 혹은 ‘텍스’라고 불렀다. 그마저 입에 올리기 힘들면 그저 ‘그것’으로 말해도 통용되었다. 젤리는 본디 그 제품의 브랜드 가운데 하나고, 텍스는 그것을 만드는 재질인 라텍스를 줄여서 한 말인데도 미리 정해놓은 암호처럼 잘 통했다.

한국인들이 입에 올리길 꺼려하는 ‘콘돔(condom)’ 이야기다. 한동안 약국 아니면 외진 지하철 화장실 자판기에서나 구입할 수 있던 콘돔을 이제는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입에 담기를 주저한다. 결혼한 성인 남성도 콘돔 구입하는 일은 대게 여성에게 떠넘기는 일이 다반사다. 사회적으로 성관계를 감추고 싶어하는 탓에 콘돔을 둘러싼 우스갯소리도 많은 듯하다.

요즘 같은 경기불황기에 콘돔 제조업은 오히려 활황이라는 말이 나돈다. 경기가 나빠지면 사람들이 밖에서 머무르기보다 일찍 귀가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콘돔 소비가 늘게 된다는 웃지 못할 얘기다. 더구나 경기가 나빠지면 사람들은 출산을 기피하게 되고, 콘돔 소비가 더욱 증가하리란 주장이다.

그러나 콘돔 관련업체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인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콘돔을 사용하길 꺼리는 경향이 있어 매출의 증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경기에서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고 환율은 오르게 마련이어서, 수출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콘돔은 원하지 않는 임신이나 성병의 감염을 막기 위해 쓰는 도구로, 천연고무인 라텍스나 폴리우레탄 등 신축성이 있는 재질로 만든 얇은 주머니다. 음경에 씌워 사정을 하더라도 정자가 질 내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특히 성병 예방에 큰 효과가 있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에이즈 예방책으로 콘돔 사용을 적극 권장한다. 남성용 콘돔은 값이 싸고 사용하기가 용이하며 부작용이 적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한국인이 사용하는 콘돔의 크기와 두께는 계속 변화해왔다. 하지만 콘돔의 두께는 제조업자나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딜레마에 가깝다. 콘돔은 그 원리상 성행위자의 직접적 피부 접촉을 막는 것인데, 그 이유로 사람들은 콘돔 사용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성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콘돔 막이 가능한 한 얇아야 하지만, 얇을수록 찢어질 위험성도 커진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규격에 따르면 콘돔의 두께는 0.065±0.015㎜를 유지해야 한다. 보통은 0.01~0.1㎜ 정도다. 물론 특수한 제품도 있다.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콘돔의 두께는 0.09㎜를 유지한다. 찢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콘돔의 규격은 세계보건기구, 국제표준화기구(ISO) 등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한국산업규격(㉿)에 따라 정해진다. 길이·두께·직경 등의 외형상 규격뿐만 아니라 내구성 확인을 위해 내구풍량과 내구풍압, 구멍(핀홀) 수 등을 정한다.

ISO 콘돔분과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생산업체와 국제기구 등이 함께 모여 새로 개발된 테스트 방법 등을 채택하기도 한다.국제규격에 따른 콘돔 길이는 ISO나 KS의 경우 최소한 160㎜다. WHO는 최소한 170㎜다. 굵기 혹은 직경은 일반형의 경우 ISO·WHO는 53±1㎜, KS는 53±2㎜다.

그렇다면 강도(强度)는 어느 정도일까? 우선 ISO 기준 공기압 테스트(bursting volume)에서는 18L 이상의 공기가 들어가야 한다. WHO는 18.5L, KS는 15.5L다. 여기에 단 한 개의 ‘핀홀’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100% 전수조사를 하는데, 그 방법도 시험규격으로 정해진다. ‘콘돔은 의료기기’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제조업체들은 각종 테스트에 대비해 모든 면에서 훨씬 정밀하고 강도 높은 제품을 만들고자 애쓴다.

길이·굵기·두께 등은 국제규격 내에서 기준을 정해 제조하지만, 지역에 따라 규격이 차별화된다. 그 기준을 살펴보면 지역에 따라 남성의 평균 크기가 드러난다. 국내 대표적인 콘돔 제조업체인 (주)유니더스는 소형(직경 49㎜/길이 160㎜)·일반형(53㎜/?160㎜)·대형(57㎜/ 205㎜) 등 세 종류를 생산한다.

이중 소형은 동남아 일부 국가로, 대형은 호주·미국·프랑스 등 서구 국가로 수출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콘돔은 일반형이 주류를 이룬다. 하지만 이 수치가 꼭 남성을 크기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의 크기보다는 여러 기능을 고려해 남성을 덮는 데 필요한 자루의 크기를 정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신체조건과 마찬가지로 남성의 크기도 그동안 적지 않은 변화를 맞은 듯하다. 이 회사가 1970년대 초반 처음 콘돔을 생산할 당시 국내용은 직경이 현재의 소형에 해당하는 49㎜이었기 때문이다. 박현조 유니더스 상무의 회고담이다.

콘돔의 재료로 최근에는 라텍스 대신에 폴리우레탄을 사용하기도 한다. 폴리우레탄 콘돔은 라텍스 특유의 냄새와 알레르기 반응이 없어 좋은 반응을 얻는다. 비교적 얇게 만들 수 있고 열전도율이 라텍스보다 높아 상대의 체온이 더욱 민감하게 느껴지는 등 남성의 성감 저하를 막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콘돔에도 유통기간이 있다. 라텍스는 고무나무에서 뽑아내는 천연성분으로 이 재료를 이용한 제품은 보통은 3~5년을 쓴다. 특히 자동차 글로브박스 같은 곳에 보관할 경우 수명이 크게 단축된다. 폴리우레탄 재질의 제품도 유통기한은 비슷하다.콘돔을 약국에서 약사가 골라주던 것을 일방적으로 받아쓰던 시대도 지났다. 이제는 편의점에서 크기나 외형은 물론 색깔과 향기까지 확인해보고 취향에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다. 외형 별로는 일반형·돌출형·링형·굴곡형이 있고, 그 특징을 조합한 제품도 나와 있다. 제품에 따라 색깔이나 향기는 다양한데 보통은 딸기-핑크색, 멜론-초록색, 바나나-연청색, 살구-하얀색, 포도-검은색 조합으로 출시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반투명 색깔에 향기 없는 제품이 많이 팔렸지만 최근에는 딸기향이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한다. 소비자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독특한 형태나 특성을 지니는 제품도 늘어난다. 그중에는 소량의 젤을 발라 사정 시간을 지연해주는 일명 ‘비아그라 콘돔’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유니더스의 제품의 경우 개당 2000원 하는 이 제품이 전체 매출의 40%에 이른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이 제품 말고도 찜질용 파스 제품의 기능을 응용한 ‘쿨(Cool) 콘돔’ ‘핫(Hot) 콘돔’ ‘비타민 콘돔’ 등 특수 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인들은 한동안 콘돔 사용을 경원시해 왔다. 무엇보다 성에 대한 폐쇄성을 근본 원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제품이 일제강점기 집창촌을 통해 들어와 불건전한 인식 속에 자리 잡은 것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 분위기가 요즘은 조금씩 바뀌어간다고 한다. 유니더스의 관계자는 “매년 대학가의 축제 기간이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는 각 대학 학생회로부터 콘돔 사용법 등을 설명해주는 강의 요청이 심심찮게 들어온다”고 말했다. 덕분에 여성들의 콘돔에 대한 인식도 점점 바뀌어가는 듯하다.

유니더스 관계자는 “회사에서 길거리마케팅을 하는데 사람들의 손을 뿌리쳤지만 요즘은 제품을 챙겨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국내 콘돔 판매량은 연중 1억 개를 헤아린다. 이 가운데 시장 점유율 60%를 넘는 유니더스가 5000만여 개를 판매한다. 전 세계에서 소모하는 콘돔의 양은 연간 80억 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20억 개는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가 공개입찰을 통해 조달한다. 콘돔 제조업체는 모두 80개 업체로, 연간 생산능력이 120억 개에 이른다.

국내 업체로는 유니더스를 비롯해 3개 업체가 전 세계 시장의 약 30%를 담당한다. 특히 유니더스는 입찰시장에서 따내는 물량과 주문자상표부착(OEM) 등을 합쳐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하루 생산능력이 213만 개나 된다. 가히 콘돔 강국이라 할 만하다.

사진=주기중 기자, 글=이항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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