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폭동' 로드니 킹 수영장서 숨진 채 발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199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촉발시킨 당사자인 로드니 킹(47)이 숨진 채 발견됐다.

17일(현지시간) 미 LA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은 로드니 킹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근교 리알토의 자택 수영장에서 의식이 없는 채 약혼자에 의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킹은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7일 오전 6시 11분 사망한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

현지 경찰은 “킹의 몸에서 어떤 상처도 없었으며 타살 흔적도 없었다”고 밝혔다. 약혼자 켈리는 뒷마당에서 킹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나가 보니 이미 킹은 수영장 바닥에 가라 앉은 상태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망원인을 가릴 계획이다.

킹은 1991년 3월 3일 만취상태로 자동차를 몰다 경찰의 정지명령을 무시하고 달아났다. 그는 추격해 온 경찰에 붙잡힌 뒤 경찰 4명으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당시 킹이 폭행당하는 장면은 인근 주민이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해 방송국에 넘겼고 TV로 방영된 경찰의 구타 장면은 흑인 사회를 넘어 국제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폭행을 가한 경찰들은 과잉 공권력 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됐지만 1년여의 재판 끝에 백인 위주로 구성된 배심원단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LA지역 흑인들은 분노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지나가던 차량을 세우고 백인 운전자를 구타하는 한편 상점을 습격하고 약탈과 방화를 자행했다. 이것이 미국 최악의 인종 소요사태로 여겨지는 1992년 LA 폭동이다.

이 폭동으로 50여명이 숨졌고 특히 LA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집중 공격대상이 됐다. 한인들은 1명이 숨지고 46명이 부상당했으며 LA 한인타운의 90%가 파괴됐다. 폭동 당시 피해 업소 1만여개 중 2800여개가 한인 업소였으며 전체 피해액 7억달러 가운데 절반이 넘는 4억달러가 한인의 몫이었다.

한편 킹은 1994년 보상금 380만 달러를 받아 돈과 전국적 유명 인사라는 명성을 함께 얻었지만 평탄한 삶은 살지 못했다. 청소년 때부터 약물과 술에 탐닉했던 킹은 이후 무려 11차례나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나기를 반복하며 경찰과 악연을 이어갔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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