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바둑, 실전은 하수 SW는 고수

중앙일보

입력

1998년 북한의 ''은바둑'' 이 세계컴퓨터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바둑과 관련, 그동안 국제무대에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북한이 어떻게 이렇게 수준 높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컴퓨터의 바둑실력은 1972년 미국의 UCLA가 처음 연구를 시작한 지 15년 만에 10급 정도에 이르렀고, 잉창치(應昌期) 컵이나 포스트컵 등 세계컴퓨터바둑대회가 생겨나면서 8급을 넘어섰다.

처음 미국과 유럽세가 강했으나 곧 중국이 최강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냈고 우리나라는 상위 입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바둑실력도 그리 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온 북한 바둑이 컴퓨터로는 세계무대를 제패하는 등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북한의 조선컴퓨터센터가 개발한 ''은바둑'' 은 최근 ''류경바둑'' 이란 이름의 소프트웨어로 삼성전자가 판매하고 있다.

또 북한의 삼천리총회사가 개발한 ''묘향산'' 이란 프로그램도 하나로통신이 판매하고 있다.

모두 ''3급실력'' 이라고 소개되고 있어 9점을 접고 북한 컴퓨터 바둑의 실력을 테스트해봤다.

둘 다 포석은 법도가 있어 보였다. 손빼고 큰 곳을 계속 두는 것도 특징이었다. 묘향산은 초속기이나, 류경바둑은 가끔 장고도 해서 기계의 고뇌(?) 가 전해오기도 했다.

양쪽 다 집짓는 감각은 좋았는데 잔수에는 약했다. 손따라 두는 것도 약점이었다. 강한 곳은 매우 강한데 약한 곳은 아주 약해 실력 측정이 어려웠다. 결국 승부는 공교롭게도 똑같이 필자의 11집승으로 끝났다.

류경바둑이 좀 더 강한가 싶었으나 마지막 패싸움에서 계속 손해를 본다. 역시 컴퓨터에도 패는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사납게 두어 이기긴 했지만 정법대로 둔다면 이기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체스에서는 슈퍼컴이 인간 챔피언을 꺾은 지 오래다. 바둑은 잉창치 바둑재단이 사람을 꺾는 컴퓨터에 1백50만달러의 상금을 걸고 있지만 사실 사람을 꺾는 컴퓨터가 나온다면 상금의 몇십배 되는 판매고를 기록할 것이다.

북한은 8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바둑협회를 결성했다.

문영삼7단과 이봉일7단이 세계아마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고, 지난해 임현철-권미현 조가 국제페어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때 바둑을 금지시켰던 북한이 이처럼 달라진 것에서도 변화의 물결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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