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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마라톤 '비운의 영웅' 별세

중앙일보

입력

한국 마라톤의 큰 별이 떨어졌다.

일제 치하인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획득, 금메달을 따낸 손기정(孫基禎.89)옹과 함께 식민지 조국에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안겼던 남승룡(南昇龍)옹이 숙환으로 20일 오전 10시25분 서울 송파구 문정동 경찰병원에서 별세했다. 89세.

南옹은 96년 9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제패 60주년 기념행사 이후 공식 석상에 일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지난해 말부터 곡기를 끊더니 지난달 1월 12일 혼수상태에 빠져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사인은 폐부종과 심부전 등 노환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 손상.

12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南옹은 보통학교 6학년 때 이미 전남 대표로 조선신궁대회에 출전해 1만m 4위, 마라톤 2위를 차지했던 육상 신동이었다. 양정고보를 거쳐 일본 아사부중학으로 진학한 南옹은 메이지대 재학 중이던 36년 올림픽 일본 대표선발전에서 孫옹을 제치고 1위로 골인했다.

당시 대표선수 3명 가운데 조선인 선수가 두명이나 출전하는 것을 꺼려했던 일본 육상연맹은 베를린에 도착한 이후에도 출전 방해 공작을 펴기도 했다.

당시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南옹은 막판 스퍼트로 동메달을 따냈으나 조국의 관심은 금메달을 따낸 손옹에게 몰렸던 '비운의 마라토너' 였다.

그러나 마라톤에 대한 南옹의 집념은 남달라 35세이던 47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해 10위를 차지했다.

이후 63년까지 대한육상연맹 이사로 활동했던 그는 "젊은이들이 지도자로 나서야 우리 육상이 발전한다" 며 칩거에 들어갔으나 생계를 제대로 꾸려가기 힘들 정도였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소갑순(81)씨와 2남4녀가 있으며 빈소는 서울 강남시립병원 영안실(3430-0456).

한편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딸 집에서 생활하는 孫기정옹은 동갑내기 친구이자 양정고보 1년 선배인 南옹의 타계 소식을 모르고 있다.

가족들은 건강이 좋아지면 南옹의 타계를 알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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