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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성 없는 돈 받아도 처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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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01면

‘공무원이 돈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한다. 이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고교 동창이 명절 때 정(情)의 표시라며 내미는 떡값도 받아선 안 된다.’
이런 법안이 만들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찬반 어느 쪽에 설까. 국민권익위가 이달 말 입법예고할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 법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다. 법 위반 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지금까지는 ‘대가성’이 확인돼야 형법상 뇌물죄로 처벌받았다.

새 법안에선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가 공무원에게 인사 채용 같은 부당한 청탁을 하는 행위도 처벌된다. 그뿐 아니다. 청탁 전화를 받은 공무원이 그 내용을 ‘청탁 등록 시스템’에 신고하지 않거나 축소 신고했다면 설사 적법하게 업무를 처리했더라도 나중에 과태료를 내거나 징계 대상이 된다.

김영란(56·사진) 국민권익위원장은 15일 기자와 만나 “이 법안에 대한 입법예고 절차를 거쳐, 연내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법안에선 공직 윤리도 대폭 강화했다. 기준 이상(3만원 예정)의 식사 대접을 받은 공무원은 곧바로 징계 대상이다. 공직자가 기준 이상(장관급은 시간당 40만원 예정)의 강연료를 받았다면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한마디로 초강경 청백리법이다. 법 집행 땐 한국의 청탁·부탁 문화가 송두리째 바뀔 정도다. 문제는 국회를 통과할 수 있느냐다. 지역구 민원인에 시달리는 국회의원이 이곳저곳에 청탁을 많이 한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대법관 출신의 김 위원장을 만나 입법 취지와 법안 통과 가능성을 물었다.

-왜 법안을 추진하나.
“나 자신이 30년간 판사 생활 하면서 청탁을 정말 많이 받았다. 판결을 앞두면 어떻게 알아냈는지 나와 관계 있는 온갖 사람을 찾아내 부탁을 하더라. 평소 이런 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국민권익위를 맡게 돼 작심하고 법안을 만들었다. 우리가 조사해 보면 공무원의 금품수수 부패는 많이 사라졌다. 공무원도 일반인도 이런 부패를 경험했다는 비율은 3% 이내에 머문다. 그럼에도 ‘공무원이 부패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항상 50%를 넘는다. 연고를 통한 청탁만이 문제를 푸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다. ‘우리가 남이가’ 의식 때문인데, 청탁을 근원적으로 막는 ‘우리가 남이다’ 법안을 만들어야 ‘빽’에 당했다는 의식도 사라진다.”

-아무리 공무원이라지만 대가 없이 받은 돈을 처벌하는 것은 과한 것 아닌가.
“공무원은 월급을 받는다. 게다가 공무원 생활이 어려울 테니 돈을 준다는 친구가 다른 가난한 친구에게도 똑같이 돈을 주나. 처벌은 과한 게 아니고 당연한 일이다. 스폰서를 막자는 취지다.”

-민원 처리도 국회의원의 중요한 역할이란 지적도 있다.
“지역구 민원에 몰두해 여기저기 전화하는 게 국회의원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청탁이 아니라도 지역 내 취약계층이나 특정 집단 등을 공식적으로 대변할 통로는 얼마든지 있다.”

-입법화가 가능하다고 보나.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서 청탁 자체를 막는 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전 국무위원이 찬성했다. 부처 협의도 마무리 단계다. 공무원들 중엔 ‘더 엄격한 법안이 좋겠다’는 지지가 많다. 국회의원들도 ‘앞으론 민원에서 해방되겠다’며 찬성하는 분이 많다. 입법화가 안 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법안 내용이 과격한 편도 아니다. 해외선 다 그렇게 한다. 내가 법안 만들 때 미국 법과 독일 법을 참고했다.”
여야 정책위의장은 일단 법안을 환영했다.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선진국으로 가는 장애 요인 중 하나가 부패인데, 부패 척결에 공감한다”면서 “연내 법안 처리 여부는 국회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용섭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연고에 기반한 고질적 청탁을 근절하고 투명 사회를 열자는 기본 방향에 동의한다. 다만 법이 실효성을 발휘하도록 정교하게 조문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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