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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없어보이면 어때?유니클로가 날린 '돌직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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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에서 열린 2012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결승, 세계 1위 노박 조코비치는 2위 라파엘 나달에게 패배했다. 누가 이겼든 간에 경기만으로도 할 말이 차고 넘치는 빅매치였는데, 사소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또 하나 있다. 지금쯤 하늘을 원망하거나(비 때문에 경기는 이틀에 걸쳐 치러졌다), ‘클레이의 제왕’ 나달의 위력을 곱씹고 있을 조코비치의 경기복에 관한 것이다.

그는 대회 내내 흰색, 빨간색, 짙은 남색 상하의를 번갈아 매칭해 입었다. 상의의 왼쪽 가슴과 소매, 반바지 끝단엔 빨간 네모가 새겨져 있었다. 빨간 네모 안에 쓰여진 건 ‘UNIQLO’. 로저 페더러와 나달이 독점해 온 챔피언 자리를 빼앗은 코트의 새로운 황제는 일본의 패스트패션 브랜드 유니클로를 입고 있었다. 더구나 전통적인 백인 귀족 스포츠와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라니, 도통 ‘격’이 맞지 않는 듯한 이 조합은 프랑스 오픈 개막 직전 공개됐다.

지난달 23일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과 조코비치는 기자회견을 열고 5년간의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조코비치가 글로벌 홍보대사가 되어 코트 안팎에서 유니클로의 옷을 입고, 의류 디자인에도 참여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윔블던과 US오픈, 올해 호주오픈까지 연이어 우승한 조코비치가 프랑스오픈까지 거머쥘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됐던 만큼 홍보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스포츠의류 브랜드도 아닌 유니클로는 왜 조코비치와 계약했을까. 다른 의류 브랜드처럼 영화배우 등 스타를 섭외할 수도 있었을 텐데.
사실 유니클로는 2011년부터 일본 테니스 선수인 니시코리 케이와 계약을 하고 있다. 일본에선 니시코리의 경기복을 보고 문의가 쇄도해 한정판 테니스복을 판매했다. 하지만 세계랭킹 18위의 아시아 유망주는 냉정하게 말하면 일본의 테니스 왕자일 뿐. 뉴욕 5번가에 화려하게 대규모 매장을 열고, 파리에 ‘많은 매장’을 열 계획이고, 사내 공식 언어로 영어를 사용키로 한 유니클로의 글로벌 경영엔 ‘격’이 맞지 않는다. 지금의 유니클로 입장에서 일본의 테니스 왕자는 스포츠의류 시장 진출을 위한 실험으로도 충분히 역할을 했고, 세계챔피언을 통해 빅무대에 본격적으로 나설 시점이 된 것이다.

조코비치와의 깜짝 계약은 해외 시장과 스포츠의류 시장으로의 확장을 위해 유니클로가 날린 ‘돌직구’인 셈이다.
돌직구는 제대로 먹혔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꽉 잡은 테니스코트에서 조코비치의 유니클로는 뉴스가 됐다. “왠지 좀 없어 보인다” “동네 아저씨 테니스복 같다”부터 “갑자기 유니클로가 달라 보인다”까지 반응은 제각각이지만 관심이 쏟아졌다.

어느 쪽의 반응이든 상관은 없을 것이다. 조코비치가 입은 걸 보고 옷이 달라 보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없어 보인다 한들 어떤가. 누군가 말하길 ‘유니클로는 돈 없고 센스 없는 남자들에게 신이 내린 브랜드’라고 했다. 합리적인 가격과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 때문에 적당히 단정하게 입는 옷이지, 어차피 ‘있어 보여서’ 입는 옷은 아니다. 디자인에 대한 품평과 관계없이 “동호회 단체복 맞추면 딱 좋겠네”라는 사람만 있어도 테니스를 시작으로 스포츠 의류 시장으로 슬금슬금 나아가기엔 충분할 것이다.

기자회견장에서 다다시 회장은 조코비치를 환영한다며 “좋은 옷으로 경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했다. 오히려 조코비치의 한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유니클로는 패스트패션도 아니고, 스포츠웨어도 아니다. 스포츠맨으로서, 활동적인 생활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필요로 하던 가장 기능적인 옷일 뿐이다.”
“성장하지 않는다면 죽는 것이 당연하다”던 다다시 회장이 말하고 싶었던, 브랜드와 성장과 확장에 대한 각오를 조코비치가 대신한 듯하다. 틈을 파고든 유니클로의 ‘돌직구’는 코트 구석을 찌르는 조코비치의 서비스만큼이나 강력할지도 모르겠다.

홍주희 기자 honnghong@joongang.co.kr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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