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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구제금융 없이 한 달 못 버텨…이탈리아도 위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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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20면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이 세계 경제에 길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스페인은 구제금융으로 은행 유동성 위기만 넘기면 당분간 큰 위기는 없을 것이다. 국가 부채가 위험 수준인 이탈리아가 문제다. 재정위기의 불길이 유로존 3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로 번지면 세계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몰린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의 긴급 진단

그리스 총선(현지시간 17일)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18일)를 코앞에 둔 15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오정근(59·사진) 한국국제금융학회장의 진단이다. 최근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를 연구해 온 그는 진정한 시한폭탄으로 이탈리아를 지목했다. 또 그리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 당수에 대해선 “38세 젊은 정치인이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무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려대 경제학 교수인 그는 영국 맨체스터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 부문 일을 했다. 학계와 금융계에서 이론과 실무를 갖춘 글로벌 경제 전문가로 꼽힌다.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13개국 경제학 교수들이 9일 서울에서 개최한 아시아금융학회(Asia Finance Society) 출범식에서 초대 공동회장으로 선임됐다.

-그리스 2차 총선 결과와 향후 전망은.
“수시로 현지 여론조사 결과를 점검하고 있다. 백중세란다. 그리스 유권자들이 총선이 다가올수록 국가 부도로 소득이 반 토막 나는 심각성을 느끼는 것 같다. 여당 지지율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시나리오다. 신민당이 이기면 기존 구제금융에 따른 긴축 재정정책을 받아들이되 어느 정도는 완화될 수 있다. 성장을 갈구하는 그리스 여론을 다른 국가들이 마냥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시리자당이 승리하면 그리스는 돈 가뭄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들어가고, 옛 자국 통화인 ‘드라크마’를 찍어내 유로존 탈퇴의 길을 걷게 된다. 외환보유액이 20억 유로에 못 미쳐 구제금융 없이는 한 달도 못 버틴다. 시리자당은 구제금융을 고스란히 받길 원하면서 강한 규제는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돈을 풀어 부채를 상당 부분 탕감해준 독일 등 북유럽 국가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리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탈퇴하면 어떻게 되나.
“유로존 전체에서 그리스 경제 비중은 2% 수준이다. 그리스가 디폴트에 들어가면 그 여파가 적잖겠지만 유로존이 극복할 만하다. ‘그렉시트(Greece+Exit)’가 오히려 글로벌 경제에 길게는 도움을 줄 수 있다. 잔불은 빨리 끌수록 좋다. 놔두면 들불로 번진다. 충격은 있겠지만 감당할 만하다. 국채 4000억 유로 중 2400억 유로의 구제금융과 1050억 유로의 부채 탕감으로 추가적인 피해가 덜하다. 그리스는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60%에 달한다. GDP가 5년째 마이너스 성장이다. 유로 호에서 빨리 그리스를 내려 놓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를 위한 금융 처방에 나서야 한다.”

-금융위기에 몰린 스페인을 ‘제2의 그리스’로 보기도 한다.
“유로존 4위 경제대국인 스페인은 부동산 거품 붕괴가 은행 부실로 이어졌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다. 국가 재정이 파탄 직전인 그리스와는 다르다. 국가 부채 비율도 GDP의 68%로 낮다. 관광산업에 주로 의존하는 그리스와 달리 스페인은 패션·항공 등 다양한 산업을 갖췄다. 1000억 유로 정도의 긴급자금이 은행에 수혈되면 유동성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 주변의 차가운 시선이 문제다. 국채금리가 ‘마(魔)의 7%’를 오르내릴 정도로 치솟는 이유다. 구제금융을 빨리 해줘 투자자 불안을 완화해야 한다. 집값 하락도 진정세를 보여야 한다. 주택가격이 2007년 3분기 최고점에 비해 올 1분기 26%나 떨어졌다. 위기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 ‘PIGS’(재정위기에 몰린 유럽 4개국)에 이어 이탈리아도 재정 위기설이 도는데.
“사실 이탈리아가 문제다. 국가부채가 2조 유로에 달해 GDP의 120%에 이른다. 이를 갚기 위해 매달 350억 유로의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런데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6%를 넘었다. 유로존 3위 경제대국이라 재정위기의 파장은 그리스에 비할 바가 아니다. PIGS에 이어 이탈리아까지 무너지면 5000억 유로의 유로안정화기구의 돈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동안 이탈리아는 자국 출신의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의 지원사격으로 근근이 버텼지만…. 마리오 몬티 총리가 지난해 말부터 진행한 개혁조치가 효과를 잃고 있다. 다시 긴축 쇄신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

-G20 정상회의 전망은.
“미지근하고 애매한 결론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모두 자국 여론을 살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각각 올해와 내년에 선거를 앞뒀다. 많은 정상들이 성장을 요구하겠지만, 메르켈 총리는 긴축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 국민들이 다른 국가에 대한 퍼주기식 구제금융에 반대하고 있다. 정상끼리 머리를 맞대도 ‘솔로몬의 지혜’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유로존 위기가 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나라를 보자. 국내 증시 유럽 투자자 비중은 30%에 이른다. 그 투자자들이 자국의 유동성 위기로 돈을 빼면 주가가 급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또 수출의 유럽 비중도 14%나 된다. 더구나 올 들어 유럽 수출은 마이너스 성장이다. 증시 급락과 수출 급감의 직격탄을 맞게 된다. 간접적인 영향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중국 수출 비중은 24%에 달하는데 중국의 유럽 수출 비중도 17%나 된다.”

-아시아금융학회는 어떤 모임인가.
“아시아 각국의 대학 교수들이 창설한 글로벌 경제학회다. 한·중·일 3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은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 기금’ 운영과 통화정책의 공조를 추진하고 있다. 학계도 이런 정부 간 공조 정책에 통일된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특히 단일 통화권이 된 유로존이 재정위기로 휘청대는 상황에서 13개국의 통화정책 공조 방안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가령 ▶국가 부채비율 등 재정 조건 ▶금융감독체계 통일 등 통화정책 공조 등에 관한 뚜렷한 가이드라인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내년 일본 도쿄 총회와 2014년 중국 상하이 총회에선 그런 가이드라인을 구체화할 것이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영국 맨체스터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 통화 연구실장,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을 거쳐 2009년 부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로 있다. 지난해 한국국제금융학회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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