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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내식당 음식 맛 챙겨라 … 노사화합 비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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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호 23면

오상민 중앙시사미디어기자

2년여 연재한 ‘경영구루와의 대화’에 이어 ‘CEO 일요 경영산책’을 시작합니다. 이전 것이 뛰어난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콘텐트를 개념화한 것이라면 이번 것은 CEO의 경영현장 체험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둘 예정입니다. 첫 출연자는 김종섭(사진) 삼익악기 회장입니다. 건설장비 플랜트 전문업체 스페코의 창업자인 그는 2002년 법정관리 위기에 몰린 삼익악기를 인수했습니다. 그 후 독일의 피아노 제작사 벡스타인 등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세계 최고의 피아노 회사인 미국 스타인웨이의 경영권까지 확보했습니다. 스타인웨이는 전 세계 연주홀에 있는 그랜드피아노의 98%를 점유한 명품 악기업체죠.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도 맡은 그는 “좋은 일 하려고 돈 번다”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의 경영론을 육성으로 3회 소개합니다.

CEO 일요 경영산책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①

식사 잘하셨나요? 저는 기업을 인수하거나 공장을 찾을 때면 꼭 공장밥을 먹습니다. 구내식당에서 밥 먹으며 짐짓 이렇게 한마디 하죠. “식단의 질을 더 높이세요. 이렇게 먹고서야 직원들이 힘을 제대로 쓰겠어요.” 꽤 먹을 만할 때도 일부러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더라 하는 소문이 나고 실제로 이튿날 식단이 좋아지면 공장 사람들 표정이 좀 달라집니다. 회사에서 배려받는 느낌, 뭐 그런 게 생기기 때문 아닐까요. 노사분규가 잦아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춘투 철이면 식단을 잘 짜라고 지시하기도 합니다. SK의 고 최종현 회장도 계열사 사업장에 들르면 구내식당을 자주 찾으셨다고 하지요? 식판에 받은 음식을 들다가 “여러분 집이라면 이렇게 맛이 간 김치를 자식들한테 먹이겠습니까”라고 야단치곤 했다더라고요. SK 구내식당 음식은 업계에서 맛있기로 정평이 있었습니다.

잘 먹는 거, 이거 아주 중요한 겁니다. 아니할 말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구내식당 음식이 좋으면 직원들의 불평·불만이 줄어듭니다. 구내식당 식사는 피부에 와닿는 사내 복지의 척도입니다. 가령 묵은 쌀로 밥을 지으면 금방 표가 납니다. 그 밥 먹으면서 회사에 대한 로열티가 생길까요. 조선 말기 대원군 시절에 임오군란(군대 반란)이 일어난 것도 당시 배급 쌀에 돌이 섞인 게 빌미가 됐지요. 구내식당을 챙겨라, 이게 구성원 간의 소통 끈입니다.

10년 전 삼익악기를 인수한 뒤 인도네시아 현지법인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인도네시아 공장 식당에 앉아 현지인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었는데 저는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인 관리자들에게 “여러분은 먹어 봤느냐”고 물어 봤습니다. 그런데 현지에 진출한 지 10년 됐을 때인데 현지법인 사장·공장장 포함해 단 한 명도 현지인 식당에서 밥을 먹어 본 사람이 없더라고요. 현지 주재원용 한국 식당에서 한정식을 줬거든요. 그날 좀 언성을 높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귀국하면서 현지인 식당에서 교대로 식사를 하라는 당부도 했습니다. 이 식당을 50만 달러를 들여 싹 고쳤는데 이것도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제 지론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따라해서 효과를 본 경우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코린도그룹 부회장으로 있는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해줬거든요. 그 역시 회사에 가서 알아 보니 역시 10년쯤 된 현지법인의 현지인 구내식당에서 음식을 먹어 본 한국인 관리자가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돌아가면서 한 번씩 점심을 먹으라고 했대요.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대요. 저희 회사도 그랬지만, 그 회사 역시 그 전까지 회의를 한국인끼리만 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우리 관리자들에게 그랬습니다. “현지인 중간 책임자 없이 여러분들끼리만 회의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요. 한국 사람끼리 점심 식사를 따로 하는 건 현지인 책임자와 ‘회식’할 기회를 외면하는 겁니다.

여담이지만 코린도 그룹 간부 한 사람이 주말에 현지인 식당 밥을 먹는 당번에 걸렸을 때의 일입니다. 그날 따라 그 집 아들이 아빠 공장을 구경하겠다고 출근길에 따라나섰답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현지인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됐는데 그 아들이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더랍니다. 어른도 먹기 힘든 밥이니 그럴 노릇이죠. 그런데 이 녀석이 “이런 밥 먹는 아빠가 불쌍하다”면서 울더래요. 집에 가서 자기 엄마에게 그러더랍니다. “아빠가 매일 그런 밥 먹으면서 돈 벌어 오는 줄 몰랐어요.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할 게요.” 그 후 아이가 정말 달라졌답니다.

제가 설립한 스페코는 35년째 매달 고사(告祀)를 지냅니다. 고사의 의례성(儀禮性)을 빌린 사실상의 회식입니다. 회식 하면 젊은 친구들이 술 많이 마시고 그러다 자기들끼리 싸움질도 하고 그러길래 엄숙한 제의 형태인 회식을 시도해 본 겁니다. 고사 지낼 때면 임직원들을 세워 놓고 제가 떡시루에 돼지머리를 올려놓은 제사상 앞에 2분쯤 꿈쩍 않고 엎드려 있습니다. 진정 무사형통을 비는 마음이기도 하지만 다들 보라는 제스처이기도 해요. 그러고 나서 한 5분쯤 훈화를 합니다.

“고사는 미신이 아닙니다. 난 교회에 다니진 않지만 전체 회식을 하기에 앞서 세 가지를 기원합시다. 우선 여러분의 안전과 무사고를 기원합니다. 둘째, 우리 회사가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요. 셋째, 우리 회사가 잘돼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공헌했으면 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 회사의 창업이념입니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엔 어울려 먹다 보면 돼지고기와 떡이 부족했는데 지금은 남아돕니다. 그만큼 잘 살게 된 거죠. 언젠가 제가 스페코 공장 새 부지를 알아보러 경기도 화성에 갔을 때입니다. 그땐 스페코 공장이 경기 오산에 있었습니다. 동행한 부동산중개업소 직원이 공장 경비원에게 스페코에서 왔다고 했더니 반색을 하는 겁니다. 저더러 그러더군요. “매달 회식을 푸짐하게 한다면서요? 그렇게 좋은 회사의 회장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산업평화도 노사가 한데 어우러져 먹을 때 옵니다. 지속가능한 기업의 요건인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와의 좋은 관계도 함께 잘 먹을 때 실현됩니다. 여유가 없는 회사라도 동네 사람들 밥 한 끼는 대접할 수 있습니다. 지방에 공장이 있는 회사라면 구내식당에 동네 분들을 초대해 정성껏 식사 대접하는 겁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뭐 별겁니까. 이렇게 한 동네 사람들과 밥 먹고 회사 제품 동네에 돌리는 겁니다. 봉제회사 같으면 봉제의류를, 우리 같은 악기 회사는 악기를 나누면 되지요. 삼익악기가 충북 음성군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음성의 초·중·고 10개교에 기타 특활반을 만들어 보라고 통기타 200대를 기증했습니다. 그래 봤자 공장도 가격으로 10만원짜리 악기입니다. 음성군 교육감이 고맙다고 밥 먹자고 합디다. 우리가 음성군청에 군민들 모아 놓고 세미클래식 연주회도 열었어요. 촌로들께서 언제 클래식 연주를 직접 들어 보셨겠어요. 삼익 직원들은 음성군에서 인기 짱입니다. 사회공헌이란 것도 이렇게 손쉽게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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