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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학살자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5호 29면

중동 민주화 바람이 시리아에서 멈추었다. 공군 조종사 출신의 하페즈 알아사드가 세우고 안과 의사 출신의 아들 바샤르가 물려받은 세습 독재정권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바샤르는 민주화 시위를 벌이는 국민에게 정예 기갑부대를 투입했다. 전차·장갑차·야포로 포격을 가하고 기관총을 난사했다. 이미 사망자가 1만 명을 넘었다. 그 정도면 수습이 불가능해 물러나는 길밖에 없을 텐데 왜 이렇게 버티는 걸까?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이유는 시리아가 정상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전 국민이 서로 감시하는 체제다. 영국 BBC방송 보도에 따르면 내부 정보기관이 서방에 알려진 것만 해도 17개다. 대통령이 지시하는 정보를 수집하고 관심 인물을 사찰하거나 감시·체포·투옥·고문·처형을 자행하는 군 정보국, 민간인을 사찰하고 문제 인물을 색출하는 내무부 정보국, 반정부 인사를 추적해 암살하는 정치보안국, 그리고 정권 모태인 공군에서 정보기관을 따로 운영한다. 정보기관끼리도 서로 감시하고 경쟁시킨다.

인구 2100만 명인 나라에서 정보요원만 15만 명 넘는 걸로 추산된다. 정보기관 끄나풀인 망원도 곳곳에 깔아놨다. 몇 푼만 쥐여주면 동네 사람들이 찻집에서 한 우스갯소리까지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친다. 대통령에 대한 불평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간다. 몇 달간 감금·고문을 당하다 불귀의 객이 되기도 한다. 재판·영장은 외국에나 있는 사치품이다. 국제 앰네스티는 탈출한 민주화 운동가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고문용 안가의 존재를 얼마 전 보고했다.

게다가 시리아군은 무아마르 카다피의 리비아처럼 분열되지 않았다. 호스니 무바라크의 이집트와 달리 독자성도 없다. 독재정권과 운명공동체다. 아사드 집안과 같은 종파인 알라위파 출신에게만 실권을 주기 때문이다. 시리아 국민 70%가 수니파 이슬람 교도인데 10%가 시아파와 가까운 알라위파이고 시리아정교, 기독교도 등이 나머지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아사드 정권 편을 드는 까닭이다.

독재정권은 교묘했다. 직업군인의 70%, 장교의 80%를 알라위파로 채웠다. 징집 군인의 대부분인 수니파 출신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걸 주저한다. 탈주병은 대부분 이들이다. 하지만 알라위파 직업 군인들과 장교들은 다르다. 이들은 정권과 생사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무너지면 생존을 위협받게 되니 아무리 잔혹한 명령이라도 따른다. 이 분열의 고리를 깨지 않으면 사태 진전이 어렵다.

특히 전차·장갑차·야포를 갖춘 최정예 제4 기계화 사단과 공화국 수비대, 최고 정보망의 공군정보국은 100% 알라위파로 이뤄졌다. 군대가 정권의 사병(私兵)이고 지휘관은 가신이다. 제4 기계화 사단과 공화국 수비대는 바샤르의 동생인 마헤르가 사령관이다. 시민들이 아무리 피를 흘려도 사태 진전이 더딘 이유다.

종파라는 낱말을 출신성분으로 바꾸면 시리아와 북한은 그야말로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시리아는 북한의 타산지석이다. 한반도 미래를 위해서도 시리아의 향방을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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