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혁명 시대의 '두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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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약 40년 전에 영국의 스노경(卿)은 ''두 문화와 과학혁명'' 이라는 제목의 리드 강연(rede lecture)을 통해 과학자와 인문학자 사이의 간극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음을 경고했다.

물리학을 공부했지만 작가로 더 유명했던 스노경의 강연은 재미있는 일화와 풍자를 통해 대중에게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다.

유명한 과학자에게 어떤 책을 감명깊게 읽었는가 물었더니 그 과학자는 "무슨 책□ 나는 책을 연장으로 쓰는 것을 좋아하지" 라는 대답을 하더라는 일화를 소개했고, 또 인문학자 가운데 열역학 제2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는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은 것과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스노경이 지적한 두 문화의 간극은 40년 전 서구의 대학에서 ''학문의 여왕'' 자리를 놓고 힘을 겨루던 물리학과 문학 사이의 간극이었다.

현재 이 간극이 40년 전보다 좁혀졌다고 보기 힘들지만 한가지 변화는 두드러진다.

그것은 정보혁명과 바이오혁명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지금 물리학이나 문학이 대학에서 학문의 여왕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후보가 아니라는 것이다.

몇년 전 사법시험 수석을 차지한 물리학과 학생이 과학자가 대접받는 세상이 아님을 깨닫고 차라리 판.검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얘기는 과학자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하지만 그래도 이는 ''고사'' 상태를 맞아 정부에 긴급 수혈을 요청하는 인문학의 위기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다.

대학은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이 아니라 공학.의학.경영학과 같은 ''돈이 되는'' 학문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창조적인 협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배울 것이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순수학문이 순수학문으로서 가치가 있고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도 타당하지만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결합해 다른 실용적인 학문이 보여주지 못하는 근본적인 효용을 보인다면 그 의미는 배가하지 않을까.

몇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보혁명은 ''지식혁명'' 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고는 한계가 뚜렷하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지식을 만들어 왔지만 그 지식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과학과 인문학은 가장 오래된 지식들이고 서로 다른 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은 지식혁명에 예상치 않은 방법으로 기여할 수 있다.

물리학.생물학.철학.역사학과 같은 개별 지식의 특성은 무엇인가. 창조적 과학과 창조적 인문학의 차이와 공통점은 무엇인가.

현대사회나 경제와 같은 복잡계를 이해하는 데 역사적 패턴에 대한 인식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인간의 감정과 같은 아날로그 체계를 이해하는 데 과학과 인문학은 각각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지식이 만들어지는 배경에 대한 이해로 확장될 수 있다.

어떠한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창조적 연구가 나오는가. 성공적인 학파의 비결은 무엇이고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가능할까.

실리콘 밸리의 경쟁과 협동의 다이내믹스를 우리의 문화에 맞게 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지식경쟁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창조적 기업의 근무환경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답을 하려면 과학기술 연구의 특성, 인간의 본성, 사회.문화적 환경의 역사적 진화, 인간 심리와 창조성에 대한 다각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두 문화의 협동 없이는 힘든 작업이다.

두 문화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과학자가 소설을 읽고 인문학자가 교양 과학서적을 읽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지만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잡종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서로가 서로의 문화를 깊게 탐험하고 이를 매개하는 ''과학기술학'' 과 같은 잡종 학문을 키우는 것이다.

이것이 40년이 지난 한국의 우리에게 아직도 스노경의 ''두 문화'' 가 의미를 가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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