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미테 붙이고 여행한 女 집에 와선 "기억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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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4월 주부 박모(55)씨는 멀미약 ‘키미테’를 귀 밑에 붙이고 해외여행을 떠났다. 해외에서 숙소를 찾지 못하고 말도 잘하지 못하는 이상행동을 보였다. 집에 돌아온 뒤에는 여행기간의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여겨 인터넷을 검색해 보다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멀미약 사용자의 사례를 여럿 보고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과 상담을 했다.

 14일 소비자원에 따르면 올 들어 8일까지 박씨와 같은 키미테 부작용 관련 상담이 13건에 이른다. 증상은 환각, 착란, 기억력 감퇴, 어지러움 등이었다. 일부에게선 몇 가지 증상이 겹쳐 나타났다. 눈동자가 커지고 수면·보행 장애를 겪은 사람들도 있었다. 소비자원 측은 “붙이는(패치형) 멀미약의 주성분인 스코폴라민 부작용”이라고 설명했다. 스코폴라민은 구토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지만, 주의력과 학습에 관계된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의 활동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다. 이로 인해 기억력 감퇴, 언어 장애, 망상 등이 일어날 수 있다. 또 동공을 확장시키기 때문에 손에 묻은 채로 눈을 비비면 동공이 줄어들지 못해 사물이 뿌옇게 보이기도 한다.

 부작용이 의심되는 약품이면서도 키미테는 국내에서 의사 처방 없이 약국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돼 있다. 스코폴라민 함유량이 적은 어린이용도 마찬가지다. 미국·영국·프랑스는 성인용도 의사 처방을 받아야만 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은 다음 달 키미테 어린이용을 전문의약품으로 변경해 의사의 처방을 받도록 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송은 소비자원 식의약안전팀 조정관은 “성인용 역시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인에게서도 부작용이 많이 신고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올해 소비자원이 상담한 키미테 부작용 13건 중 8건이 성인에게서 일어난 것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서상원 교수팀 또한 2001~2006년 여성 환자 7명(평균 72세)을 조사하고 “붙이는 멀미약이 일시적 치매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노년 여성들이 멀미약 선택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명문제약이 1985년 출시한 ‘키미테’는 국내 멀미약 30여 종 중 유일한 패치형이다. 마시는 것과 패치형을 통틀어 멀미약 중에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기도 하다. 지난해 성인용 208만 개, 어린이용 136만 개가 판매됐다. 명문제약 측은 “제조방법·성분함량에 변화가 없는데도 최근 소비자원에 부작용 사례 접수가 늘어난 까닭을 조사 중”이라며 “문제점이 나오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환각·착란 부작용 올 13건 접수
“전문의약품으로 바꿔야”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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