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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고도 세월 따라 변한다 바뀌지 않아야 할 것은 사회에 대한 책임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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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편하게 만나 아무 얘기나 하는 사이가 고향 친구요, 고교 동기생이다. 대학 동창만 해도 웬만큼 추억이 쌓이지 않은 이상 흉허물 없기가 쉽지 않다. 예민한 사춘기를 함께 뒹굴며 보낸 우정이 그만큼 길고 도탑다. 사회 진출 후엔 각자 직장에서의 애로를 털어놓고 정보 교환도 한다. 진한 동지의식이 삐끗거려 엉뚱하게 민간인 사찰에 힘을 쓴 경우도 있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지역·학교 간 수능성적 비교, 서울대 합격자 수 같은 기사에 눈길이 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제 본지에 ‘전남 장성군, 서울 강남구 제치고 수능 평균 전국 1위’ 기사가 실렸다. 기숙학교인 장성고가 군 전체 성적을 끌어올렸다. 굳이 장성고 출신이 아니더라도 장성군과 인연 있는 모든 이가 반색할 뉴스다. 개별 학교 순위로 가면 역시나 특목고·자율형사립고가 강세다. 2012 수능 표준점수 합계 상위 30곳 중 특목·자사고 아닌 곳은 단 한 곳이었다. 중년 이상 세대가 고교생이던 시절은 경기고·서울고·경복고 등 서울의 절대강자와 지방 명문들이 경쟁했다. 서울이 평준화된 뒤에는 한동안 지방고가 전성기를 누렸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출신고교만 보더라도 전통 명문의 잔영(殘影)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경기고가 17명으로 1위, 경복고·광주제일고가 각각 9명으로 공동 2위, 대전고가 7명으로 4위. 6명씩 배출한 경남고·전주고·제물포고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젊은 세대가 속속 사회에 진출하면 추세가 바뀔 게 뻔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올해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는 예술계를 제외하고 서울과학고 93명, 대원외고 75명, 용인외고 57명, 한성과학고 50명의 순이었다. 머지않아 정계·법조계·관계에서 특목고 출신이 대세를 점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어느 나라, 심지어 북한에도 명문은 있다. 미국엔 존 F 케네디가 졸업한 초트 로즈메리 홀, 부시 부자가 나온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가 있다. 일본도 1981년부터 30년 넘게 도쿄대 합격자 1위를 기록 중인 가이세이(開成)고교를 비롯, 나다(灘)·쓰쿠바대부속 고마바(駒場)·아자부(麻布)·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등 명문고 입학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일본 국회의원의 경우 게이오기주쿠고교 출신이 16명으로 압도적인 1위다.

 걱정되는 점은 특정 지역·계층의 명문고 쏠림 현상이다. 과거 경기고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이는 ‘전국구’ 성격이 강했다. 지역·계층을 초월한 용광로 역할을 일정 부분 담당했다. 지금의 명문들은 과연 그러한가. 국가의 장래를 위해 기성세대가 사려 깊게 짚어볼 일이다. 미 매사추세츠 주의 명문 필립스 아카데미 앤도버 고교는 라틴어로 ‘논 시비(Non Sibi)’, 즉 ‘이기심을 버려라(Not for Self)’라는 교훈으로 유명하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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