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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현직 검사 첫 체포영장 신청 … 검찰은 바로 기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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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경찰관에게 폭언·협박을 한 혐의(모욕)를 받고 있는 대구지검 서부지청 박대범(38) 검사에 대해 경찰이 12일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이 현직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검찰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기를 거부하면서 검·경 간 마찰이 격화되고 있다.

 대구 성서경찰서는 이날 “고소인인 경남 밀양경찰서 정재욱(30) 경위와 피고소인인 박 검사의 주장이 엇갈려 소환 조사가 불가피하다”며 “박 검사가 경찰의 거듭된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아 부득이 체포영장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장 신청을 접수한 대구지검은 이날 오후 “체포영장의 요건과 필요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형사소송법상 경찰이 검찰에 체포영장·구속영장 등을 ‘신청’하면 검찰은 법원에 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이 발부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수사 주체는 박 검사의 주거지를 관할하는 대구 성서경찰서이고 성서경찰서는 대구지검의 관할 아래 있다. 따라서 박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은 박 검사가 소속된 대구지검에 신청됐다. 경찰이 ‘제 식구 감싸기’라며 반발하는 이유다. 경찰은 당초 이 사건을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배당했으나 검찰은 사건 당사자의 관할 경찰서로 넘기라고 지휘했었다.

 검찰은 체포영장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라서 ‘기각’했다는 입장이다. 대구지검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박 검사가 피의자들로부터 고소당한 정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 경위의 진술 태도와 무리한 수사 방법 등에 대해 질책을 한 사실만 인정된다”며 “모욕죄 성립에 필요한 ‘공연성(公然性·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가능성)’도 결여돼 박 검사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구속영장과 달리 체포영장은 경찰이 신청하면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며 “검찰이 박 검사에 대한 수사를 사실상 중단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은 영장 재신청, 재지휘 건의 등 후속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경찰은 또 “영·미 시스템에선 경찰이 법원에 직접 영장을 청구하고, 일본에선 체포 및 압수수색 영장을 경찰이 직접 청구한다”며 “앞으로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영장 청구 권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 경위는 지난해 8~10월 밀양 지역 폐기물 업체를 수사하다 업체로부터 ‘과잉 표적 수사’라며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당했다. 그는 당시 창원지검 밀양지청에 근무하던 박 검사가 자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뭐 이런 건방진 자식이 다 있어. 너희 서장, 과장 불러 봐?”라고 폭언을 했다며 올 초 박 검사를 경찰에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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