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나무야 고마워, 깊은 산골에 퍼진 웃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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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 벌랏한지마을을 찾은 충주 한림디자인고 학생들이 한지 원료로 쓸 닥나무 껍질을 벗겨내고 있다. [청원=프리랜서 김성태]

한국전쟁이 발발한 줄도 몰랐다는 충북 청원군 문의면 소전1리 벌랏한지마을. 면사무소에서 굽이굽이 외길을 따라 10㎞가량 고개를 몇 개나 넘어야 도착하는 외진 곳이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곳 주민들은 한지를 만들어 대전과 청주에 내다 팔았다. 하지만 수요가 급감하면서 살길이 막막해지자 주민 가운데 절반 가량이 외지로 떠났다. 남은 주민들은 보리농사와 산나물 채취로 삶을 꾸려갔다.

이렇게 한지 만들기 전통이 끊겼던 이 마을이 다시 한지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주민들이 한지를 다시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일부 주민이 “전통을 잇고 마을도 살리자”는 나섰다. 이듬해 농촌진흥청과 군청에서 지원 받은 1억3000여 만원으로 폐기처분되기 직전이었던 종이공장 자리에 체험관을 지었다. 첫해인 2006년에는 방문객이 1000여 명에 불과했지만 점차 입소문을 타고 늘기 시작했다. 천연 재료로 한지를 만들고 주민들이 직접 채취하고 만든 산나물, 꿀 등을 구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4일 이 마을에 충주 한림디자인고등학교 학생 32명이 찾아 한지 만들기 체험에 나섰다. 학생들은 체험관 앞 정자에서 방망이로 닥나무를 두드렸다. 솜털처럼 부드러워진 껍질을 커다란 물통에 넣고 휘휘 저은 다음 네모난 틀에 걸러내 물기를 뺐다. 이 틀을 불에 달궈진 쇠판 위에 얹자 뽀얀 색깔의 한지가 완성됐다. “와~ 신기하다”는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우수민(18)양은 “TV에서만 보던 과정을 직접 체험해보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1박2일간 마을에 머물며 한지와 공예품을 만들었다.

벌랏한지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무대라고 해도 믿겠다”고 말할 정도다. 한지 만들기로 마을이 부활하면서 이 마을은 2010년 농촌진흥청이 주관한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 100선’에 뽑혔다. 초등학교 졸업 후부터 한지를 만들었다는 이정용(72) 할아버지는 “체험관을 운영하기 전까지는 밭농사로 겨우 생계를 유지했는데 지금은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마을에는 22가구 38명의 주민이 산다. 체험관 운영 전 1000여 만원이던 가구당 연소득은 요즘 배가량으로 늘었다. 지난해 마을을 찾은 방문객은 1만2000여 명. 마을 전체가 올린 지난해 소득은 1억7000여 만원가량이었다. 1인당 5000~1만원의 체험비와 숙박비를 받고, 고사리·취나물, 꿀 등을 판매해 올린 소득이다. 올해는 1만5000여 명이 마을을 찾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체험관 운영과 이장을 맡고 있는 김준수(75) 할아버지는 “35년 전 마을을 떠났다 2년 전 돌아와 다시 이장 일을 보고 있다”며 “큰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먹고 사는 데는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마을은 다음 달 7~8일 이틀간 처음으로 한지축제를 연다. 숙식은 마을회관과 민박(8가구)을 이용하면 된다.

청원=신진호 기자

청원 벌랏한지마을

▶위치: 충북 청원군 문의면 소전1리
▶인구: 22가구 38명(65세 이상 30명, 79%)
▶수입원: 마늘·고추농사, 한지체험관, 민박
▶방문객(2011년): 1만2000여 명, 1억7000여 만원 수입
▶주요 프로그램: 한지·공예품 만들기, 숲 생태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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