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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게임 경계 무너진다

중앙일보

입력

흔히 영화 같은 게임, 게임 같은 영화라는 표현을 한다. 그만큼 두 장르는 서로 닮은 꼴이다. 게임에도 감독이 있고 출연 캐릭터들이 있으며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가가 있다.

두 장르의 첫 만남은 영화를 게임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때문에 영화를 주제로 한 게임은 영화의 한계를 극복하기보다는 부가적인 재미, 즉 단순한 퍼즐이나 액션을 추가하는 정도가 전부라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PC와 콘솔 업계의 그래픽과 사운드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영화와 게임에서 사용되는 최첨단 기술간의 거리는 좁혀지기 시작했다.

사실 기술적인 차이가 좁혀지기 이전부터 많은 게임들이 영화에서 사용되는 각종 연출기법을 게임에 적용하기 시작했으며 게이머들은 영화에서 느끼는 것보다도 더 큰 ‘감동’을 게임을 통해 받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며 슬퍼하고 기뻐하며 열광하는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관객들 사이에 일체감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때때로 영화의 그것보다도 더 ‘진하게’ 다가온다. ‘보고 듣는 것’이 느낄 수 있는 체험의 전부인 영화와는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직접 자신의 분신을 조종하고 ‘함께 체험’하기 때문이다.

수십 시간 동안 함께 한 파이널 판타지의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할 때의 슬픔은 영화의 그것보다 더욱 강하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도 실제 인간과 같이 피곤할 때는 잠을 자야 하고 배고플 때는 밥을 먹어야 한다. 아예 인간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심즈’ 같은 게임은 유럽과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네처, 폴리스 너츠, 메탈기어 솔리드 등을 제작한 코나미의 히데오 코지마 감독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지독한 헐리우드 영화광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제작한 게임인 ‘폴리스 너츠’의 주인공 컨셉은 리설 웨폰의 멜 깁슨으로 실제 영화의 그것을 모방했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게다가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로 등장하는 것은 흑인 형사다).

게임을 영화로 제작하는 시대 도래

그의 간판 타이틀인 ‘메탈 기어:솔리드 스네이크’는 게임의 시나리오 구성과 전반적인 설정 등에 있어서는 오히려 헐리우드 영화의 그것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

코드 네임 메탈기어로 불리는 ‘이동형 핵병기’를 파괴하기 위해 ‘폭스 하운드’라는 특수 부대 출신의 솔리드 스네이크가 활약하는 이 게임은 단순한 RPG나 액션 게임과는 다르다. 영화보다도 더 긴박감 넘치는 액션을 제공하는 동시에 플레이어는 그것을 단순히 보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헤쳐 나가야’만 한다.

솔리드 스네이크가 액션만 추구한다면 이전에 등장했던 액션 ‘게임’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인간 병기로서 철저하게 교육받으며 살아온 솔리드 스네이크는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살인 병기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 한다.

솔리드 스네이크라는 게임 소프트 하나에서 히데오 코지마는 평화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등 다양한 질문을 플레이어에게 던진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의 ‘영역’을 수 차례 침범해온 PC게임 분야는 스케일부터 다르다. 세계적인 게임 소프트 유통사인 EA소프트의 개발사 중 하나인 웨스트우드(WESTWOOD)의 ‘커맨드 & 퀀커’ 시리즈는 치밀한 시나리오와 멋진 동영상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게임 동영상을 3D로 처리하는 것과는 달리 레드얼럿에서는 헐리우드 규모의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 영화배우들을 기용하여 동영상을 제작한다.

스페이스 슈팅 게임인 ‘윙 커맨더’(Wing Comannder) 시리즈를 제작한 오리진(Origin)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게임 시리즈에 실제 영화배우들을 기용하여 제작한 동영상을 삽입하고 있다. 윙 커맨더 시리즈 중 하나인 ‘프로퍼시’(예언)에는 웬만한 영화 한 편 제작비와 맞먹을 정도의 비용이 투자된 동영상이 삽입되어 화제가 되었다.

영화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시작된 게임과 영화의 만남. 이제는 게임을 영화로 제작하는 시대가 왔다.

아이도스(EIDOS) 소프트의 간판 게임인 ‘툼 레이더’(Tomb Raider)는 역사상 가장 섹시한 주인공으로 손꼽히는 라라 크로포드가 등장하는 게임.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와 본드 걸이 시리즈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배우로 바뀌는 것처럼 새로운 툼 레이더 시리즈가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라라 크로포드가 등장하고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비슷하게 생긴 섹시한 배우나 모델들이 홍보 모델로 선택되어 활동하는 것이다.

게다가 곧 있으면 게임 툼 레이더를 소재로 한 ‘툼 레이더 영화’가 개봉할 예정이다. 이미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나 모탈 컴뱃(Mortal Combat) 같은 게임들이 영화로 제작된 전례를 살펴볼 때 게임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이미 보편화된 인식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이들이 ‘실제로 경험 할 수 있는 영화’를 꿈꾸고 있고 ‘영화 같은 게임’을 제작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게임과 영화를 제작하는 일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의 꿈이 동일하다는 것이며 이미 그 경계선은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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