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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라는 명분으로 저지른 모든 악 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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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6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비욘드 더 힐스’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은 문주 감독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칸(프랑스) 로이터=뉴시스]

크리스티안 문주(44) 감독은 루마니아 영화 파워의 상징적 존재다.

 그가 2007년 불법 낙태를 소재로 전체주의 사회의 위선을 고발한 ‘4개월, 3주 그리고 2일’로 칸 국제영화제 최고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을 때만 해도 영화 변방 루마니아 감독의 신선한 도발 정도로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지난달 27일 폐막한 칸 영화제에서 ‘비욘드 더 힐스’로 각본상, 여우주연상 두 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자 세계 영화계는 루마니아 영화를 하나의 뚜렷한 경향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비욘드 더 힐스’는 수녀가 된 친구 보이치타(코스미나 스트라탄)를 만나러 수도원을 찾은 알리나(크리스티나 플루터)를 신부와 수녀들이 ‘이방인’으로 경계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렸다. 신부와 수녀들은 알리나의 몸 안에 깃든 악마를 퇴치해야 한다며 비과학적 방법으로 치료하다 결국 죽게 만든다.

영화 ‘비욘드 더 힐스’. 코스미나 스트라탄(오른쪽)은 올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종교로 대변되는 집단이념과 그릇된 확신이 개인에 대한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전작 ‘4개월…’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수상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영화 재편집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그를 e-메일로 만났다.

 -영화를 왜 재편집하나.

 “2시간 30분의 분량이 너무 길다는 지적 때문이다. 세계 곳곳의 관객들은 2시간 정도의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국내에서는 연말 개봉 예정이다.)

 -모티브는 어디서 얻었나.

 “2005년 루마니아의 한 수도원에서 젊은 여성이 악마퇴치술을 받다 숨진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사건을 다룬 책을 읽고 감독으로서뿐만 아니라 전직 기자로서 흥미가 동했다. 정교회는 악마퇴치 의식을 금지했지만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인터넷에 넘쳐난다.”

 -영화의 메시지를 간추린다면.

 “이 시대 모든 비극은 신념과 선의라는 그럴 듯한 명분하에서 저질러지고 있다. 그런 비극에 대한 무관심은 더 큰 악(惡)이다. 50년간의 공산주의 체제가 사람들의 도덕성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4개월…’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도 차우셰스쿠(1918~89·전 루마니아 대통령) 독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두 주인공은 차우셰스쿠가 만들었던 고아원 출신이다.”

2007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4개월, 3주 그리고 2일’. 낙태수술을 받은 여대생의 이야기다.

 -교회권력을 비판한 것 아닌가.

 “종교라는 사회제도가 갖는 부작용을 다뤘을 뿐이다. 종교적 관습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아닌, 진정한 기독교 정신이 무엇인가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정교회는 공산주의 붕괴 후 더욱 힘이 세져 정치인들도 비판을 삼갈 정도다. 교회의 위세만큼 기독교 정신이 널리 퍼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정교회가 차우셰스쿠의 땅에 4억 유로(약 5600억원)의 돈을 들여 교회를 세우고 있는데, 가난한 나라에서 왜 그런 교회를 만들어야 하나.”

 -촬영에 어려움은 없었나.

 “춥고 눈이 많이 내린 게 가장 힘들었다. 칸 영화제에 출품하기까지 시간이 빠듯해서 호텔방 하나를 편집실로 꾸며 쉬지 않고 작업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두 여배우의 연기가 빛났다.

 “크리스티나 플루터는 인터넷에서 사진을 보고 픽업했고, 코스미나 스트라탄은 오디션에서 감정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둘 다 내 고향(라시) 출신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각각 언어학, 언론학을 공부한 재원이지만 많이 못 배운 시골처녀 연기를 잘해줬다.”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으면 하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처럼 수동적 자세만 취하지 않는다면 어느 쪽 편을 들어도 상관없다. 내게 해가 되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무시해왔던 것들의 사회적 의미를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오락영화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나는 강하고 메시지가 뚜렷한 영화를 만들려 한다.”

 -유명해진 뒤 달라진 점이라면.

 “영화 만들 때 투자가 잘 들어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수상 때문에 내 삶이 바뀌는 것도 원치 않는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같은 차를 몰고, 가끔 광고도 찍고, 그런 일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다.”

◆크리스티안 문주(Cristian Mungiu)=1968년 루마니아 출생. 교사·언론인 생활을 하다가 영화감독이 됐다. 오랜 세월 독재정권 밑에 있었던 루마니아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권력과 개인의 관계를 천착해왔다. 2007년 부산영화제 심사위원으로 방한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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