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40주년 공연 갖는 가수 하춘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데뷔 40주년이라고 하니까 60대 할머니인 것으로 알지만 아직 40대랍니다." 이달 23-2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데뷔 40주년 기념공연을 갖는 가수 하춘화(46)씨는 묻지 않았는데도 자기 나이부터 챙겼다. 기나긴 가수 경력때문에 실제보다 나이를 많게 보는 이들을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그는 여섯살 때인 1961년 '효녀심청 되오리다'로 가요계에 데뷔해 '잘했군 잘했군' '영암 아리랑' '물새 한 마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불렀다. 40년간 발표한 노래가 2천여곡에 이른다. 이번 공연은 창사 40주년을 맞는 MBC와 공동으로 치르며 공연수익금은 전액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탁할 예정이다. 공연은 23일 오후 7시, 24일 오후 4시와 7시에 모두 3차례 열린다.

다음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 대회의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의 내용.

- 가수로 데뷔한 계기는.

▲ 다섯살 때까지 부산에서 살다가 아버지 직장때문에 서울로 이사했다.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당시 동화백화점이 있었는데 그곳의 예술학원을 다니다가 음반 취입을 하게 됐다. 당시 노래를 가르친 분이 '맹꽁이 타령' '대한 팔경' 등을 작곡한 현석기 선생님이다. 현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보통 아이가 아니니 음반취입을 해보라"고 권유해 10인치 LP에 8곡을 수록한 데뷔 앨범을 내놓게 된 것이다.

여섯살짜리 어린아이가 음반을 발표하자 일본 요미우리(讀賣) 신문 등 외국 언론들이 취재를 하기도 했다. 당시 보도내용을 포함해 40년간 활동에 대한 기사들은 잘 스크랩해서 보관하고 있다. 이 기록은 앞으로 대중가요사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훗날 공공기관에 기증할 계획이다.

-데뷔연도가 빨라 공연 때 나훈아씨가 관객으로 구경했다고 하는데….

▲부산 광명극장에서 리사이틀을 할 때 데뷔 전의 나훈아씨가 공연 모습을 지켜봤고 내게 사인을 받으려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노래활동을 하면서 나보다 연장자이고 같은 프로가수의 입장에서 서로를 존중해 왔다.

-전남 영암에 '하춘화 고교'가 실제로 있나.

▲부모의 고향이 영암이어서 '영암 아리랑'을 부르게 됐다. 가수로 인기를 얻었던 70년대 초에 영암에 고교가 없어서 학교 터와 창고를 매입해 기증하고 인가를 얻는데 도움을 줘서 낭주고교가 설립됐다. 이런 인연으로 고향 사람들이 그 학교를 하춘화 고교라고 부른다. 개교식 때 교정에서 공연을 했는데 인근 군민들을 포함해 2만여명이 운집했다.

-40년 활동기간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면.

▲시민회관(세종문화회관) 화재 현장에 있었다는 것과 이리(지금의 익산)역 폭발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6개월간 무대에 서지 못했던 일이다. 가슴벅찼던 일은 1985년 평양에서 공연했던 일이다. 당시 북한 동포들 앞에서 젖먹던 힘까지 다해 열창했는데 한 명도 박수를 치지 않아 황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때만 해도 평양에 가는 것은 적지에 죽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기회가 닿으면 다시 평양에서 노래해 그곳 동포들로부터 열띤 박수를 받고 싶다.

-지금까지 발표한 음반 가운데 가장 히트한 것은.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잘했군 잘했군'이 가장 많이 판매된 것으로 안다. 당시 서울시내 전축 보급 댓수가 20만대 안팎이었는데 예약을 해야 음반을 살 수 있었다. 이 음반은 해외 동포들에게 선물용으로도 크게 환영받았다. 이 음반을 발매한 지구레코드측에 따르면 음반발매 이후 지금까지 300만장 정도 팔렸다고 한다.

-그동안 발표한 2천여곡의 노래를 모두 기억하나.

▲히트곡 70-80곡 정도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날 찻집에서 귀에 익은 노래를 듣고 기억을 더듬다가 내 노래인 것을 알았던 적도 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지난해 석사학위까지 받았는데.

▲어렸을 때 연예계에 입문하다 보니 공부에 대한 미련이 많았다. 95년 결혼한 뒤 남편의 권유로 방송통신대에 편입해 막내 동생뻘의 어린 학생들과 떡볶이, 계란빵을 먹어가며 공부했다. 이어 동국대 대학원에서 공연예술을 전공해 '한국 가요의 원류와 변천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지난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1인 3역을 하느라 수면부족으로 수업중 코피를 쏟거나 기절한 적도 있다. 공부를 계속하는 것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현역을 떠나면 대중가요 전문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뒤늦게 공부를 한 것은 이를 위한 준비작업이다.

-개그맨 김영철씨가 하씨가 노래하는 모습을 흉내내 인기를 끌었는데….

▲흉내내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다. 한 가지 눈을 까뒤집는 정도를 조금만 줄여 줬으면 좋겠다(웃음). 김영철씨 덕분인지 요즘 공항같은 데서 중학생들이 사인을 해달라는 일이 자주 있다.

-이번 공연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놓는 동기는.

▲불우이웃돕기는 오래 전부터 해 왔다. 16세 때 '물새 한 마리'가 히트한 뒤 아버지가 사회에 봉사하는 가수가 되라고 말씀해 주셨다. 당시만 해도 연예인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고 사회적으로 대접받지도 못했다.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런 인식이 차츰 바뀌는 것을 봤다. 그 후 안양 나자로 마을에 300만원을 기탁했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큰 액수였다. 데뷔 30주년 공연도 MBC와 함께 치렀는데 그때도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전액 기탁했다.

-공연은 어떻게 진행되나.

▲합창단 200명, 밴드 100명, 무용단 80명이 동원되는 대형 무대이다. 이런 공연은 당분간 보기 힘들 것이다. 이번 공연은 1년 전부터 준비했으며 데뷔음반에 실린 "안녕하세요 하춘화입니다"라는 멘트로 시작된다. 공연은 내 히트곡뿐 아니라 중장년층 관객을 위해 한국가요 70년사를 돌아볼 수 있는 무대로 꾸미겠다. '황성옛터' '타향살이' '귀국선'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등 시대별 대표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368-1515. (서울=연합) 정천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