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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구명 압박한 레이건도 결례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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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인권법이 정국 이슈로 떠올랐다.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이 탈북자 백요셉씨에게 “북한 인권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짓 하고 있다지?” “변절자 새끼” 등의 욕설을 한 데 이어 같은 당 이해찬 대표 후보가 “북한 인권 문제 개입은 내정간섭이자 외교적 결례”라고 발언하면서다.

 북한인권법에 대한 이 후보의 시각은 민주당의 일반적 정서이기도 하다. 18대 국회에서 법 제정을 둘러싸고 민주당의 입장이 그랬다. “실질적인 인권 개선 효과는 없으면서 북한만 자극한다”는 논리로 민주당은 법안 통과를 반대해 왔다. 2008년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이 발의했던 북한인권법은 2010년 2월 외교통상통일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지난 5월 자동 폐기됐다.

 북한인권법안은 김문수 경기지사가 17대 국회 때인 2005년 8월 처음 발의했으나, 당시에도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반대로 폐기됐었다. 윤상현 의원 등 11명은 3일 북한인권법을 다시 발의해 놓은 상태다.

 윤 의원은 이 후보의 내정간섭론에 대해 “미국의 북한인권법은 탈북 난민 보호 규정까지 두고, 일본의 북한인권법은 북한의 인권 침해를 이유로 북한 선박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징벌적 규제까지 넣었으나 그 때문에 북·미, 북·일 관계에서 큰 문제가 생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국제 인권기구 차원의 대응’을 언급한 것에 대해선 “폐쇄적인 북한의 특성상 인권기구의 행동에는 제약이 따른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CPR) 등 인권 관련 국제협약을 비준한 상태다. 따라서 북한에 이를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협약 가입국의 권리다.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가 최근 발간한 ‘북한인권백서 2012’는 “북한이 유엔 회원국이고 국제 인권조약에 가입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이를 준수하는지 국제사회가 감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북한인권법을 반대해온 것은 통합진보당과의 연대를 의식한 측면이 크다. 통합진보당은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이른바 ‘내재적 접근’을 중시해 왔다. 북한의 입장에서 현안을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입장에선 북한을 비판할 수가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더 이상 기존 입장을 고수하기는 부담스러워졌다. 종북 논란 탓이다. 이 후보 발언에 대해 당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익명을 원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임수경 의원이 막말을 하는 바람에 벌집 쑤셔놓은 듯한데 유력 당 대표 후보까지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고 꼬집었다. 통합진보당에서 시작된 종북 불똥이 민주당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을 경고한 말이다. 인터넷에서도 “전두환 신군부에 김대중 전 대통령 사형 집행을 말렸던 미국 레이건 정부도 외교적 결례를 한 거냐”는 비판이 나왔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연대를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재정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안 원장은 지난달 30일 부산대 강연에서 “북한의 보편적 인권이나 평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며 “유독 이 문제가 안 보인다면 국민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었다. 민주당이 그를 끌어들여 대선 후보 단일화를 이루기 위해선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윤 의원은 “민주당이 법안을 표류시키려 하겠지만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만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원보·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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