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동거 남녀 대학생, 단속피해 1900명 강남 대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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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다단계업체 I사의 출범식에 관계자들이 모여들고 있다. I사는 거마대학생을 상대로 불법 다단계영업을 벌이던 N사를 합병한 뒤 새로 출범했다. [이정봉 기자]

4일 오후 3시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 정장 차림을 한 사람 300여 명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중년이었지만 간혹 20대 초반도 보였다. 초청장을 지닌 사람만이 입장이 허용됐다. 주변엔 건강보조식품 광고지 꾸러미와 다단계업체들로부터 온 화환 3개가 놓여 있었다. 이날 행사는 다단계업체 I사의 출범식이었다. 서울 서초동에 본사를 둔 I사가 송파 지역에서 거마대학생을 포섭해 영업을 해 온 N사와 합병한 직후 연 축하행사였다. 합병과 함께 근거지를 ‘거마’(거여·마천) 지역에서 강남 한복판으로 옮겨 새 출발한 것이다.

 N사는 최근 경찰의 단속으로 조직이 와해된 불법 다단계업체다. 이 회사의 사업부장 황모(32)씨와 정모(39)씨는 거마대학생 1500여 명에게 1년6개월 동안 63억여원어치의 물건을 팔게 한 혐의로 지난달 31일 구속됐다. N사는 4개의 사업부로 구성돼 있었는데 그중 2개는 황씨와 정씨가 맡았었고 이번에 구속을 면한 사업부장 이모(40)씨와 정모(33·여)씨가 거마대학생 900여 명을 이끌고 강남 지역으로 활동기반을 이동한 것이다. 경찰은 "사업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 강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다단계업체와 손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해 7월부터 서울 거여·마천동 일대에서 집단합숙하는 대학생들에게 불법 다단계 영업을 시킨 업체 8개를 적발해 사법처리했다. 그 여파로 거마대학생 집단합숙소 숫자도 113개에서 6개로 거의 와해 직전까지 갔다. 그러자 거마대학생 업체가 거점을 강남 중심으로 옮기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이 같은 강남으로의 이동은 단속이 상대적으로 허술하고, 거마 지역에서 지리적으로도 가깝기 때문인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또 다른 불법 다단계업체 E사도 이미 지난해 12월 강남구 역삼동에 본사를 마련하고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E사는 지난해 9월 상위 판매원 김모(37)씨 등 4명이 구속됐지만, 남은 조직원이 1000여 명의 거마대학생을 이끌고 강남으로 이동한 것이다. 경찰은 I사와 E사 소속 대학생들의 집단합숙소를 찾고 있다.

 경찰의 단속을 받았던 불법 다단계업체가 영업을 이어나가는 것은 특유의 사업 방식 때문이다. 불법 다단계업체는 사업부가 하나의 독립된 사업체처럼 운영된다. 사업부는 사장에게 물품을 받아 판매한 뒤 대금을 지불할 뿐 월급·퇴직금을 주고받지 않는다. 일종의 거래처인 셈이다. 방문판매법에 의해 대표가 처벌되면 5년간 영업을 할 수 없지만, 사장은 허수아비에 가깝다. 경찰은 “다단계업체가 아메바처럼 분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불법 다단계업체가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는 이유다.

거마대학생, 아메바처럼 분열 #사장 잡혀가도 조직은 건재
상부 사라져도 쉽게 새출발
강남 한복판서 출범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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