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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버냉키만 쳐다보는 세계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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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경제전문채널인 CNBC는 3일“여름을 두려워하게 됐다”는 월가의 한 경제분석가 말을 전했다. 여름 문턱인 지난 주말 글로벌 주가가 가파르게 떨어져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8월 위기와 꼭 닮은꼴”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 미국·유럽 주가는 갑자기 추락하기 시작해 보름 정도 새 15% 미끄러졌다. CNBC는 한술 더 떠 “여름 호러쇼의 후속편 같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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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무니없는 비교는 아닌 듯하다. 불안 요인들이 비슷하다. 지난해 8월의 시작은 그리스 국가부도 우려였다. 여기에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과 더블딥(경기회복 뒤 재침체) 우려가 더해졌다. 유럽이 재정 위기 와중에 실물 경제 침체 가능성이 커진 모양새였다.

 요즘 위기의 방아쇠는 유럽 재정위기의 2부 격인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탈퇴 우려다. 이는 지난달 초부터 글로벌 시장을 압박했다. 이런 와중에 글로벌 실물 경제 둔화 조짐이 시장을 엄습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G쇼크’다. 성장(Growth) 기대의 붕괴를 뜻한다.

 불길한 조짐은 세계 3대 경제권에서 모두 나타났다. 세계 최대 경제인 미국에선 다시 더블딥 조짐이 나타났다. 올 1분기 성장률이 1.9%로 낮춰졌다. 애초 2.2%였다. 그 바람에 일자리도 기대만큼 늘지 않았다. 5월 신규 취업자수가 6만9000명에 그쳤다. 적어도 20만 명은 돼야 미 경제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도 맥이 없다. 제조업이 눈에 띄게 활력을 잃고 있다. 그 여파로 서비스 부문도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원조 닥터둠’인 마크파버 투자자문사 마크파버리미티드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사태보다 더 두려운 일”로 중국 경기 둔화를 꼽았다. 위기의 진원지인 유로존은 이미 경기침체 국면에 들어섰다. 올 1분기 성장률이 0%에 그쳤다. 4월 실업률은 11%에 달했다. 사상 최고치다.

 지난해 8월과 달라진 점도 있다. 정치력의 부재(不在)다.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지난달 본지 주최 경제대담에서 “유럽 사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정치에 있다”며 “하지만 그 정치가 작동하지 않아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58)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58)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 리더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위기 땐 니콜라 사르코지(57)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 등이 유럽 위기 진단과 처방을 놓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른바 ‘메르코지(메르켈+사르코지 컨센서스)’ 시대였다. 하지만 요즘 메르켈과 올랑드 사이엔 서로 다른 목소리만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메르켈이 올랑드 등이 요구한 유럽통합채권(유로본드) 발행 등을 재차 거부했다”고 3일 보도했다. 메르켈이 재정긴축 중심의 기존 처방을 고수한 것이다. 더욱이 메르켈의 거부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유럽 리더들의 신속한 대응을 촉구한 직후에 나왔다. 유럽 리더들이 시장 위기에 빠르게 대응하고 나설 준비가 안 돼 있는 셈이다. 지난해엔 이렇지 않았다. 당시 유럽 리더들은 재정안정기금을 늘리고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추가로 투입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또 신재정협약을 맺어 화폐통합의 2막을 올리기도 했다.

 메르켈-올랑드 불협화음 탓에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움직일 수 있는 폭마저 제한적이다. 드라기는 6일 밤(한국시간)에 열릴 금융통화정책회의를 연다. 시장은 그가 기준금리를 내리고 스페인 등의 국채를 또다시 사들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최대 주주인) 독일이 반대하고 있어 국채 추가 매입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로이터통신 등은 내다봤다. 그 바람에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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