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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들려요 … 금메달은 … 보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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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혜민

경기장에 들리는 건 선수들의 기합과 탁구공 소리뿐이었다. 하지만 여느 대회와 달랐다. 선수들은 입이 아닌 손으로 대화하며 경기를 진행했다. 3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태평양농아인경기대회 탁구경기 현장이다. 수많은 선수들 사이에 키 작고 앳된 얼굴의 여자 선수가 매섭게 상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키가 1m50cm로 상대와 나란히 섰을 때 머리 하나는 차이 날 만큼 작았지만 매서운 스매싱을 연이어 날렸다. 이번 대회 최연소 탁구 선수 정혜민(13)이다.

 정혜민은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다. 보청기를 껴도 바로 앞에서 지르는 큰소리만 들을 수 있다. 부모도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하지만 부모는 딸을 장애라는 틀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도 딸의 탁구선수 꿈을 위해 인천에서 국내 유일의 농아탁구팀이 있는 청각장애특수학교기관인 에바다학교가 있는 평택으로 전학시켰다. 정혜민은 탁구에 집중했고, 뛰어난 운동신경 덕에 기술을 금세 익히며 일반 선수보다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부천에서 열린 전국소년체전 여자탁구 단체전에 경기도 대표로 출전해 단·복식에서 모두 활약하며 동메달을 따냈다. 탁구는 ‘눈 50%, 귀 50%’의 스포츠라고 한다. 열심히 뛰면서 공만 잘 보면 되는 게 아니라 타구 소리를 들으며 구질을 파악하거나 박자를 맞춰야 해 ‘청각’도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정혜민은 장애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뛰어난 기량으로 일반 선수들을 잇따라 꺾었다.

 이날 치른 아시아·태평양농아인경기대회 여자탁구 개인전 8강에서 세계농아인탁구선수권 2관왕의 강자 사토 리호(일본)에게 패했으나 혼합복식 금메달과 단체전·여자복식 은메달을 따냈다. 참가 선수 대부분이 20대인 상황에서 10대 초반 학생이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것이다.

 정혜민의 소망은 올림픽 메달이다. 세계 최고 탁구선수가 돼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고 싶어서다. 정혜민의 “소년체전 참가가 제일 기뻤다. 올림픽 메달을 따 엄마를 편하게 해 드리고 싶다”는 수화에는 간절함과 자신감이 함께 배어 있었다. 정혜민의 시선은 2013년 불가리아에서 열리는 세계농아인올림픽으로 향해 있다. 세계 최강인 중국과 일본 선수들을 넘어야 하나 한참 기량이 성장하고 있어 메달 가능성은 높다.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는 꿈을 꾸는 정혜민은 남보다 더 많은 노력으로 ‘귀로 들을 수 없지만 마음으로 듣고 느끼는 경기’를 하고 있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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