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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농협, 중앙회 임직원의 것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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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김영훈
경제부문 기자

지난 3월 새로운 농협이 출범했다. 농협을 신용(금융)과 경제(농업) 부문으로 분리하는 게 골자다. 돈벌이 대신 농협의 주인인 농민 지원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담아서다. 50년 만의 개혁이란 수식어가 붙었고, 이런저런 청사진도 나왔다. 그러나 아직 손에 잡히는 변화는 없다. 소비자는 별반 달라진 걸 못 느끼고, 농민은 반신반의한다. 이런 농협의 직원이 지난달 30일 한목소리를 냈다. 농협중앙회 노조는 이날 96.1%의 찬성으로 총파업을 결의했다. 새 농협이 출범한 지 90일만의 일이다.

 발단은 ‘사업구조 개편 약정서’다. 경영 효율화, 자체 자본 확충, 농산물 판매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노조는 이 약정서가 구조조정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약정서는 정부가 농협에 5조원을 지원하는 데 따른 약속 증명서다. 국민 세금 5조원이 들어가는데 이런 약속도 없이 돈을 줄 순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새 농협 출범을 계기로 농협 직원은 이미 1097명 늘었다.

 파업 결의의 근원에는 정부 간섭에 대한 반발이 있다. 31일 선임된 사외이사 4명 중 정부 출신 인사가 2명이다. 금융 부문에도 금융감독원 출신이 여럿 자리를 잡았다. 노조가 반발할 만하다. 그러나 외부 개입을 자초한 것 또한 농협이다.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면 외부에서 훈수가 들어오게 마련이다.

 사정이 어떻든 노조가 일자리 걱정을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 해법은 파업에 있지 않다. 농협이 구조조정이 능사가 아니라며 내세우는 곳이 강원도 횡성의 서원농협이다. 부실 조합이었던 서원농협은 지난해 43억원의 이익을 냈다. 조합원과 직원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룬 결과다. 이런 곳을 구조조정하라고 닦달할 외부 세력은 없다. 조합원인 농민이 조합을 지킬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농협·농민단체 고위직을 두루 거친 이헌목 한국농산업경영연구소장은 “지금까지 농협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임직원이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조합원은 무관심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50년 만의 개혁을 했다는 농협은 아직 이런 진단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파업 결의보다 먼저 보여야 할 것은 손에 잡히는 변화다. 농민이 농협을 ‘중앙회 임직원의 것’이 아닌 ‘내 것’이라고 느끼게 되면, 그들은 기꺼이 외풍을 막는 바람막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