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내 최초 ‘동물해설사’ 도입한 서울대공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주부’에서 ‘동물해설사’로 변신한 황원숙씨는 “최종 합격 발표 때 ‘예비번호 5번’으로 아슬아슬하게 합격했기 때문에 더욱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슨트, 문화유산해설사, 숲해설사에 이어 동물해설사가 등장했다. 서울대공원에서는 홍학이 날지 못하게 된 사연, 동물원 기린무리의 애정 관계와 같은 동물생태를 동물해설사가 흥미롭게 풀어내 이야기해주면서 관람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동물해설사들은 아이 엄마부터 은퇴한 노부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인물들이라 더욱 정겹다. 제2의 인생을 동물원에서 시작한 해설사들을 찾아가 봤다.

 “사람과 기린의 목뼈 수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사실 사람도, 기린도, 코끼리도 모두 7개의 목뼈를 가지고 있어요. 신기하죠? 저기 보이는 한 쪽 뿔이 조금 짧은 기린이 우두머리인 ‘제우스’에요. 암컷을 두고 2인자 기린과 결투를 벌이다가 뿔이 잘렸답니다.”

 황원숙(46?서초구 양재동)씨는 서울대공원에서 엄마나 주부란 호칭대신 ‘동물해설사 선생님’으로 통한다. 대공원 로고가 새겨진 초록색 제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쓴 후 동물원에 들어서면 진짜 탐험가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해진다. 서울대공원에는 황씨와 같은 마흔네 명의 일반인 동물해설사가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5일제 확대와 함께 서울대공원은 국내 처음으로 교육을 통한 동물해설사 육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지난 1월 100명 정원 모집공고에 무려 1280명이 지원했다. 업무를 담당했던 동물기획과 담당자는 “모집기간 내내 사무실 전화가 불이 날 정도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약 13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50시간의 교육과 이론·실기 시험을 거쳐 최종 선발된 동물해설사들의 자부심은 클 수밖에 없다. 이들을 만나본 관람객들은 평소 보던 동물도 색다르게 보였고, ‘동물원 관람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에게 동물에 대해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린 뿔이 부러지면 다시 안 나는 것과 천연기념물도 알려주셨잖아요. 다음에 또 뵙고 싶습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직접 써 보낸 어린이의 ?팬래터?를 보면 눈물이 날 만큼 자랑스럽기도 하다. 특정 선생님의 이름을 대며 언제 볼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걸려올 정도로 이들은 서울대공원의 인기스타가 됐다.

50시간 교육·시험 거쳐 1기 44명 봉사 활동

 동물해설사 황씨에게 서울대공원은 남다른 추억이 있는 곳이다. 30여 년 전 서울대공원이 처음 일반에게 선보이는 날, 수의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이곳을 찾았었다. 그날 아버지와의 즐거웠던 하루를 오롯이 기억하는 황씨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내게 마지막 선물로 이 일을 주신 것 같다”고 전한다. 평범한 주부였던 황씨는 이제 건들기만 해도 술술 이야기가 쏟아지는 전문가가 다 됐다. “동물에게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는 그는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떠올리면 관람객들에게 하나라도 더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활기차진 황씨의 모습에 주변 친구들은 부러워한다.

 황씨 외에도 동물교실에 11명, 곤충교실에 6명, 단체교실에 27명의 해설사들이 있다. 대다수가 50~60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한 시간 전에 출근해서 개별 스터디 모임을 하거나, 봉사 시간 외에도 다른 해설사의 일을 돕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고령 해설사인 은정남(71세·용인시 동백동)씨는 어린이 동물교실에서 유치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해설을 진행한다. “이곳에서 동물,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하면 삶의 의욕이 솟는다”는 그는 “주변 친구들에게 멋지게 늙어가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고 자랑했다.

 은퇴한 노부부가 함께 활동하는 사례도 있다. 윤석권(69·과천시 별양동)씨는 2005년 정년퇴임을 하면서부터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아내인 이규은(65·과천시 별양동)씨는 2009년 합류했다. 현재는 부부 동물해설사가 되어 나란히 활동 중이다. 이씨는 “동물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비싼 카메라를 구입해 몇 시간이고 지켜서 있을 정도로 남편은 열정적으로 일한다”며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함께 다니며 봉사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고백했다.

 동물해설사들의 해설을 들으려면 서울대공원 홈페이지(grandpark.seoul.go.kr)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된다. 곤충교실, 어린이동물교실, 단체교실을 포함해 각 프로그램은 30분에서 1시간30분 가량 진행한다. 아직은 단체 위주로 신청을 받고 있지만, 순차적으로 다양한 해설프로그램을 늘려갈 예정이다.

▶ 문의=02-500-7780

<강미숙 기자 suga337@joonanga.co.kr 사진="장진영">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