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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냄새 귀신' 미래에셋 노리는 2900억대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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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염전으로 사람과 돈이 몰리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영광 영백염전에는 지난해 3000명이 다녀갔다. 사진은 충남 태안반도 염전지대에서 염부가 천일염을 채취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전남 염산면에만 염전 82개

 해마다 5월이면 전남 영광군 염산면에는 소금꽃이 활짝 핀다. 염부(소금장이)는 염전 바닥에 소금 결정이 생기는 걸 ‘소금꽃’이라 부른다. 소금 ‘염(鹽)’자가 들어간 지명대로 염산면은 염전 천지다. 운영 중인 염전만 82개다.

 영백염전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처음으로 실시한 농림수산식품부의 염전 콘테스트에서 1등을 했다. 1등의 비결은 ‘3무(無)’다. 이 염전 염부의 공구함에는 쇠로 된 못이 없다. 못질을 해야 할 곳이 있으면 녹이 슬지 않는 특수 못만 사용한다. 소금에 이물질이 섞이는 걸 막기 위해서다. 각각의 염판을 나누는 둑에도 싸고 흔한 부직포를 쓰지 않는다. 고급 송판만 고집한다. 염전 바닥엔 장판도 없다. 언젠가부터 상당수 염전의 바닥엔 비닐 장판이 깔렸다. 불순물을 걸러내고 작업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영백염전은 친환경과 편리 사이에서 접점을 찾았다. 항아리였다. 가로·세로 4.5㎝의 옹기판을 붙여 염전 바닥을 만들었다. 일일이 손으로 붙였다. 이 염전의 크기는 43ha(약 13만 평)다. 오주섭 영백염전 이사는 “옹기 바닥이 숨을 쉬듯 갯벌과 소금을 이어준다”고 말했다.

 염전이 부활하고 있다.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다. 투박한 천일염의 진가를 소비자가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염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친환경만이 살길이란 인식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 ‘식객’의 모델인 성창염전(전남 신안군 도초면)의 소금 창고에는 소금이 모두 공중에 떠 있다. 염전에서 거둬들인 소금을 큰 자루에 1t씩 담아 천장 기둥에 매달아두기 때문이다. 박성창 사장은 “소금에 스며들어 있는 바닷물을 완전히 빼고, 공기 중에서 소금을 숙성시키기 위해 개발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15~30일을 걸어둔다. 이런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면 쓴맛이 사라지고 소금의 풍미가 좋아진다. 대신 박 사장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오래 걸어둘수록 수분이 줄어 소금의 무게가 덜 나가기 때문이다. 박씨는 “소금 맛은 빛과 바람에 사람의 정성과 기술이 더해져야만 완성된다”고 말했다.

세계적 명품 소금 뺨 치는 국산 천일염

 염전의 생산물인 천일염은 45년간 ‘광물’로 취급받았다. 2008년 3월에야 법적으로 식품으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대기업이 먼저 움직였다. 2009년 10월부터 ‘국민 과자’ 새우깡이 정제염 대신 천일염을 사용했다. 2010년 10월 외식업체인 베니건스가 천일염 스테이크를 선보였다. 지난해 일본의 방사능 유출 사고로 요오드 바람이 불면서 천일염에 대한 대중적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돈 냄새를 맡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벤처 투자업계가 염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200억원 규모의 농업 투자 펀드인 ‘미래에셋 애그로 프로젝트 투자조합’은 요즘 염전 투어 중이다. 250억원 규모의 ‘미시간 글로벌 식품산업 투자조합’도 천일염을 가장 유망한 농어업 식품으로 보고 있다. 미시간벤처캐피탈의 이창호 부사장은 “위생관리 등의 문제로 국산 천일염이 평가절하돼 있지만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갯벌에서 나는 천일염은 귀하다. 전 세계 소금 생산(2억6000만t)의 60%는 돌에서 채취하는 암염이다. 갯벌 염전에서 생산하는 소금은 0.6%에 불과하다. 0.2%라는 주장도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산 천일염은 경쟁력이 있다. 덜 짜고 미네랄 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명품 천일염으로 꼽히는 제품은 프랑스 게랑드 지역에서 나는 천일염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국산 천일염 1㎏당 칼륨 양은 3067㎎이다. 게랑드 소금(1073㎎)의 3배다. 마그네슘도 국산이 3배 정도 많다. 칼슘은 국산과 프랑스산이 비슷하다. 입소문이 나면서 국내 천일염 시장 규모는 지난해 2897억원(출고가 기준)으로 불어났다. 2009년 1500억원 규모의 시장이 2년 만에 배로 커진 것이다.

MBA 출신이 염전 사장

 한때 염전은 은신처였다. 범죄자가 숨어들기도 했다. 세상과 단절된 울타리 안에서 노동력이 착취되기도 했다. 박성창 성창염전 사장은 “다 옛날얘기”라며 “지금은 제대로 대우하지 않으면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가끔 경찰이 찾아와 귀찮게 하곤 한다”며 웃었다.

 염전의 문이 활짝 열렸다. 전남 신안군 증도의 태평염전은 2007년 7월 소금박물관을 열었다. 연간 10만 명이 찾고 있다. 손일선 태평염전 사장이 프랑스 게랑드에 갔다가 염전이 단순한 생산시설이 아니라 휴양·체험시설로 활용된다는 데 충격을 받고 만들었다. 천일염으로 만든 인공 동굴을 활용한 휠링센터도 2010년 문을 열었다. 천일염 레스토랑도 있다. 태평염전과 주변 체험·휴양 시설은 ‘슬로 시티(Slow City)’를 표방하는 증도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됐다. 박종화 태평염전 총괄관리팀장은 “염전 주변을 자연치유적인 휴식공간으로 만드는 과정”이라며 “소금 휠링센터를 확대한 ‘소금 호텔’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백염전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체험 프로그램이 본격화된 지난해 3000명이 다녀갔다.

 소비자에게 한발 더 다가가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영백염전은 염전 곳곳에 설치된 폐쇠회로TV(CCTV) 화면을 소비자가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연결했다. 요리 축제에서도 천일염은 인기 코너다. 지난 8~11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코리아 푸드 쇼 2012’에서는 천일염 홍보관이 별도로 설치됐다. 국내외 요리사 20명이 출전한 천일염 요리 경연대회도 열렸다. 코리아 푸드쇼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식품박람회다.

 염전 주인의 면면도 바뀌고 있다. 돈 많은 지주에서 경영인으로의 변화다. 손일선 태평염전 사장은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했다. 영백염전의 민동성 사장, 오주섭 이사는 은행 간부 출신이다. 오 이사는 “염전의 발전 가능성을 일찍 봤을 뿐”이라고 말했다. 박성창 성창염전 사장은 30여 년간 교편을 잡은 교사 출신이다.

염전 80%는 아직 영세적

 염전의 부활이 장밋빛만은 않다. 한국 염전의 평균 점수는 여전히 낮다. 농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염전은 999개에 달한다. 염전의 평균 면적은 3.9㏊다. 그런데 전체 염전의 80%인 796곳은 염전 면적이 평균치를 밑돈다. 일부를 빼면 여전히 염전이 소규모 영세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짜 소금이 소비자 신뢰를 갉아먹기도 한다. 지난해 김장철(10월)에는 중국산 소금 1만 부대(30㎏ 기준)를 해남 천일염으로 속여 판 유통업자가 검거되기도 했다. 이들이 속여 판 소금은 1억8000만원어치에 이른다. 유통은 불모지에 가깝다. 천일염은 경매 시장도 없다. 대형 염전이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주문 판매하거나 납품하는 것을 빼면 대부분 목포 지역의 도매상을 통해 공급된다. 수급이 들쭉날쭉하고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농식품부는 천일염 명품화에 총력전을 편다는 계획이다. 농약·방사능 등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지난 3월부터 전국의 모든 염전으로 확대했다. 소금 포장에 이력 정보를 기재해 소비자가 스마트폰 등으로 생산지·생산시기·생산자를 확인할 수 있는 이력관리제도 6월 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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