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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에닝요 특별귀화 무산돼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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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브라질 출신 프로축구 선수인 에닝요(31·전북)의 특별귀화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대한체육회가 지난 22일 법제상벌위원회를 열어 대한축구협회에서 재심의를 요청한 에닝요의 복수국적 획득을 위한 추천을 또다시 거부한 데 따른 것이다. 용병이 ‘태극전사’로 뛰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귀화가 무산된 원인은 무엇인가. 에닝요 귀화를 둘러싼 양 갈래 목소리를 들어봤다.

피부색과 혈통이 국가대표 조건 될 수 없다

박정근
호서대 교수·체육학과

내가 재직하고 있는 호서대에서 몇 년 전에 중국 소프트볼 여자 국가대표 왕종연 선수를 스카우트해 귀화를 시킨 적이 있었다. 왕종연 선수 덕분에 호서대가 전국대회 우승도 많이 했다. 국내 선수와 비교해 공이 너무 빨라 ‘왕종연 룰’(왕종연 선수는 7회 중 3회까지만 던질 수 있도록 함)을 적용하기도 했다.

 왕종연 선수 덕분에 국내 소프트볼 경기력이 크게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당시 한국여자야구대표팀은 일본 대표팀에 대패를 했다. 그만큼 실력차가 현격했다. 여자야구연맹에서는 경기력이 뛰어난 왕종연 선수를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시키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쳤고, 그 결과 대회를 며칠 앞두고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대회에서 여자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2승을 올렸다. 그 당시에는 여자야구연맹 관계자 모두가 왕종연 선수 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일심동체가 되어 뛰었다.

 요즘 에닝요 선수 귀화 문제로 찬반 열기가 뜨겁다. 피부색과 혈통이 다르다고 해서 태극전사가 될 수 없다는 논리는 이미 설 땅을 잃었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라모스·로페스 등 브라질 선수를 귀화시켜 대표팀에 발탁해 자국 축구의 수준을 높였다. 특별귀화를 통해 에닝요를 대표팀에 발탁하자는 제안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방법과 절차다. 대한체육회와 대한축구협회는 그런 점에서 미숙함을 노출했다.

 체육회의 입장은 이렇다. 귀화에는 한국어 실력과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데 에닝요 선수의 한국어 실력이 수준 이하일뿐더러 한국어를 배우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57개 가맹경기단체를 총괄하는 체육회는 다른 종목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측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종목마다 외국 선수들이 귀화하게 되면 국내 선수의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축구협회 입장은 프로농구에서도 선수 3명(문태종·문태영·김한별)이 특별귀화를 했고, 화교 3세인 공상정(쇼트트랙)도 특별귀화를 했는데 왜 에닝요는 안 되느냐는 것이다. 복수 국적을 허용하는 것이어서 선정 과정이 신중해야 하는 건 인정하겠지만 지금까지 외국인 선수에 대한 귀화가 별 어려움 없이 받아들여졌는데 ‘소양’을 이유로 에닝요는 안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에닝요 귀화불발 건은 두 체육단체 간 커뮤니케이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축구협회는 상급기관인 체육회에 타당한 설득과 사전조율을 해야 함에도 그런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만약 귀화 건을 대표팀 감독-축구협회 기술위원장-축구협회장-체육회장의 단계를 밟아서 진정성을 갖고 체육회의 도움을 간절히 청했으면 일이 이렇게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체육회도 소통 부재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상급기관은 하급기관을 지원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급기관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고압적이거나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 안 된다.

 이번 에닝요 사태는 피부색이나 혈통이 ‘한국인’이 되는 데 더 이상 장애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줬다. 앞으로 에닝요뿐만 아니라 더 뛰어난 선수들도 한국인이 되고 싶어 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일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K-리그도 용병 선수들과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더욱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박정근 호서대 교수·체육학과

한국 문화 함께 나눠야 국가대표 자격 있다

김정효
서울대 강사·체육철학

브라질 출신 축구선수 에닝요의 특별귀화 추진을 두고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번 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근대 5종이나 조정처럼 비교적 관심을 덜 받는 종목이었다면 이런 문제가 불거졌을까. 그만큼 한국인에게 축구라는 스포츠의 의미가 남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더구나 한국 축구는 8회 연속 월드컵 출전을 위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비상한 시점에 있다.

 한국 축구는 국가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4년마다 온 국민이 겪는 비장감은 선수들의 가슴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지금은 어깨에 새겨져 있다). 축구 대표팀 최강희 감독과 대한축구협회의 에닝요 귀화 추진도 어쩌면 이 태극기의 중압감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다행인 것은 요즘 정치판처럼 추태를 부리지 않고 대한체육회의 재심 결과를 조용히 수용한 축구협회의 자세다. 스포츠가 갖는 가치도 이런 원칙의 확립과 깔끔한 승복의 미덕과 닿아 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번 에닝요의 귀화 프로젝트는 언젠가 짚고 넘어가야 할 한국 스포츠의 민족주의라는 미묘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아직 한글도 깨치지 못한 선수에게 태극마크를 달게 할 수 없다는 고집에도 일리가 있다. 한편에서는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 여성이 국회의원까지 되는 마당에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꼬집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문화의 개방과 국적의 개방은 엄연히 다르다. 문화로서의 축구는 끊임없이 개방되어야 한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청용(볼턴)이 체험하고 온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머지않아 한국 축구의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용병으로 활약하다 떠날 K-리그의 외국인 선수에게 기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문화는 이처럼 소통을 본질로 하지만 국적은 절차를 필요로 한다. 절차란 선택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묻는 행위다. 이것이 용병과 다른 점이다. 대한축구협회의 에닝요 귀화 프로젝트에서 소홀히 다룬 것이 바로 이 절차였다. 선수로서 에닝요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에닝요는 한 사람뿐이다. 대한체육회의 특별귀화 추천 불가 판단도 ‘그가 아니면 안 될’ 필연적인 이유를 찾지 못해서일 것이다.

 국적의 필연성을 부정하는 것에서 세계화는 시작된다. 그래서 태어난 곳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선택한, 혹은 선택할 국적의 문화는 존중되어야 한다. 문화는 통과의례의 절차를 통해 공동체의 정서를 나누어 가지는 ‘할부(割賦)의 체험’을 동반한다. 게양되는 태극기에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들으며 가슴 뭉클해지는 그런 경험의 공유가 절차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제2의 에닝요는 수시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다문화 시대의 대세이고 흐름이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국적을 부여할 수는 없다. 필요는 조건에 따라 변하지만 태극마크는 변하지 않으며, 심지어 아무나 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변하지 않는 충분조건을 원칙으로 정해야 한다. 이번에 대한체육회 법제상벌위가 에닝요 재심의 요청을 기각하기로 결정한 것을 환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제에 운동선수 등 특별한 목적에 따라 특별귀화를 요청하는 경우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감정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 있다.

김정효 서울대 강사·체육철학